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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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2-12 19:3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지금은 북풍이 몰아치고 있는 겨울, 밤은 길다. 이러한 때야말로 좁은 생활반경 속에 머물게 된다. 이러한 계절에 정신세계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게 되고, 반복되는 생활의 규제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 사색과 명상의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평안한 마음과 맑은 영혼으로 책을 읽기에 가장 적합한 때이다.

오늘은 ‘무엇인가 4권’(박용기 저)을 머리말부터 다시 읽었다. 오늘따라 깊이 있는 신학적 주제들에 대한 해설을 구체적으로 밝혀 집필해 놓은 책이라는 데서 관심이 더해졌고, 단숨에 읽게 되었다. 진리의 터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림 없이 진리를 수호하고 후대에 전승하기를 소원하며, 여러모로 받은 바 은사 따라 마음과 뜻을 모아 사명을 감당하는 지체들에게 성령의 놀라운 능력이 덧입혀지기를 기원하는 저자의 머리말이 내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목차를 보게 되면 경건, 서원, 사명, 상, 심판, 영혼, 부활, 영원, 영광,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10가지 주제들에 대해서 수록되어 있다. 이 주제를 가만히 살펴보면 성숙한 성도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정리해야 할 주요한 요소들이 다 나와 있다. 한번 읽고 말 책이 아니었다. 먼저 ‘경건’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8)

전도서에서 솔로몬이 아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인간의 제일 되는 본분이라고 가르쳐준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은 바로 ‘경건’이라는 뜻이고, ‘경건’한 삶이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의 삶으로 그 마음의 자태를 표현한 말로 이해된다. 무엇보다도 성경이 말하는 ‘경건’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감동과 안위하심에 대한 평강을 바탕으로, “영원자존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깨달아 알고 마음과 뜻을 다해 그를 경외하는 심리적 자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경건’의 진정한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과 속성을 깨달아 알고 경외하는 지혜로운 마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전제가 있다고 한다. 경외의 대상인 하나님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확실히 믿어지는 신앙을 전제해야 하고, 그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것을 전제하지 아니하면 위선을 조장할 위험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경건’은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고, 설령 하나님의 존재는 믿어진다 해도 하나님의 속성을 모르면 경외하는 마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경외의 대상인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여호와 계시’ 성경을 통해 확신시켜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경외 받으실만한 속성(전능성, 신실성, 주권선, 영원성, 자비성)들을 알고 택한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알고 깨달아 믿어지게 해서 그를 경외하며 섬기게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한 ‘경건’은 사람의 심령 상태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의 소욕이 강화될 뿐만 아니라 ‘경건’이 심령에 형성된 성도는 가치관에 대한 변화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한도 끝도 없는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는 것이 인간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육체의 욕망을 쳐 복종시키며 살게 되고, 부정한 마음은 점차적으로 사라지면서 정결한 상태가 심령에 점점 충만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중심의 가치관이 여호와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가치관으로 변화되므로, 타락한 육체의 욕망에 의한 인간 중심의 세속적 가치관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깨달음과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신령한 가치관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더욱 분명하게 확신하게 된다고 한다. 그 결과로서 행위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지성으로 깨닫게 되면 감성의 변화가 오며 이로써 의지작용에 따른 결단이 이루어지고 행동이 촉발됨은 물론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존엄하심의 영광을 찬양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이 성취되기를 간구하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양은 감사와 평강을 동반하고, 여호와의 언약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간구는 심령에 소망과 기쁨을 동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경건’은 형식적인 모양이 아니라 내적인 실재로서, 신앙의 대상인 영원자존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깨달아 알고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그를 경외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의 나라와 의에 대한 간구가 생활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건’한 성도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받은 바 은사를 따라 실행하는 영적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도 교회당 안에서 의식에 따른 형식적 예배를 드릴 수가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지 않았는가. 거룩함을 얻은 ‘경건’한 성도는 오직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은사를 실행하는 생활을 통해 삶의 예배를 드리며 신령한 기쁨도 함께 누리며 살아가야 된다. (박용기 저, 무엇인가 4권 참조,p17~27) 

사람들이 보통 나이가 육십이 넘어서면서부터는 대부분 참 인생 허무하다고 한다. 그래서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허탈하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서 정반대의 생각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참 여한이 없이, 참 값진 삶을 살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저녁에 자리에 누워서 명상을 하게 되면 잠이 쉽게 든다. 오늘 나에게 어려움을 주신 분도 여호와, 형통함을 주신 분도 여호와, 망하게 하는 것, 흥하게 하는 것, 병들게 하는 것, 병을 고쳐주는 것, 모든 만사를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섭리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오늘 정말 여호와를 인정하고 감사가 있었는가? 친구와 전화하면서 내 자랑을 하지 않았는가? 불평불만 염려 걱정이 왜 없을까마는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범사를 더 좋게 해가는 과정이라는 데 위로가 따른다. 감사할 뿐이다.

모르면 속을 수밖에 없는 신학적인 주요한 주제를 글로 써서 밝혀놓은 한 권의 책의 소중함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지혜의 영이 함께 해주심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께서 어쩌다가 깨어진 질그릇 조각 중에 한 조각 같은 나로 하여금 여호와를 경외할 수 있게 하셨는가? 칠흑의 어둠 속에서 망망대해를 비추는 등댓불을 발견한 기쁨이요, 메마른 내 영혼을 촉촉이 적셔주는 단비의 귀함이 아닌가.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강미정 권사 (광주산수서광교회)

불신앙의 결과는 패배
모르면 속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