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앙의 결과는 패배
홀로 녹차를 마시며 지나온 삶을 곰곰 반추하여 본다.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갈 무렵, 나는 하루하루를 숨바꼭질 속에서 살았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 생각하는 것은 오직 돈 뿐이었다. 은행 마감 시간이 다가오는 오후가 되면 죽재도 죽을 겨를이 없었다. 이렇게 여호와께서는 나로 하여금 호된 시련을 겪게 하고 건강이 망가진 후에야 범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지 아니하면 미련하고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하게 하고는, 어찌하든지 성경을 배우게 하고, 성경신학에 몰두해야겠다는 마음을 담아주셨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도는 오직 ‘여호와’ 당신만 깨달아 알고 경외케 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빼앗아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섭리하셨다.
때마침 여호와께서 교회체제개혁이 단행되게 해서 ‘의미분석 성경개론’(박용기 저) 책을 보게 하여 포괄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성경강론’(박용기 저 18권)책을 완간되게 하여,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라는 주제를 따라 말씀을 배워가도록 섭리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 존재하심이 믿어지게 하고, 범사가 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되게 하며, 성경 말씀 자체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힘이 있음을 깨닫게 했다. 이 귀한 영원불변의 절대적인 진리를 여호와께서 알지 못하게 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한참을 책상 의자에 아픈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섭리 가운데, 광야에서의 일차 시련, 반역, 불신, 그리고 패배하도록 섭리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떠올랐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로 애굽에서 나오게 해서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게 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했다. 모세를 통하여 그들로 홍해를 건너 시내광야를 출발하게 하여 가다가, 목마르고 배고프다고 여호와를 원망하게 하고, 모세를 반역하게 하고, 우상을 섬기다가 저주를 받아 죽게도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그들에게 알게 하려고 진노를 하다가, 용서도 하다가, 이방에게 패배를 당하게도 하고 온갖 연단을 시킨다. 특별히 바란 광야에서 여호와의 명을 좆아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땅으로 보내었을 때, 그들이 정탐하고 돌아와 그 자손들 앞에 보고할 때,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 10명 모두가 불신앙적 보고를 하게 된다. 그 결과로 그 자손들이 여호와를 멸시하고 모세를 원망하면서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한 그들을 여호와께서 다 죽이기로 한다.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20세 이상의 자손들은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에 다 죽게 하고, 그 시체가 소멸되기까지 40년 동안 그 자손을 광야에서 유리방황하게 한다. 새로 번성케 해서 세대교체를 이루게 하여, 새로 태어난 자손들로 하여금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게 한다. 이러한 역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세우신 언약을 이루어주기 위하여 전능하신 능력을 행사하신 것이다”(박용기 저, 성경강론2권 참조)
그러니까 생각하면 이스라엘 백성들,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하나님께서 열 재앙을 통해서 구출해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여호와를 원망하며 탐욕을 부리게 하는 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첫 번째 시련을 겪게 되는 동기가 된 셈이다. 그리고 불신앙은 여호와의 능력을 잊어버린 결과이요, 여호와의 언약에 대한 불신앙은 패배를 가져오게 하는 원인이다. 어쨌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범사에 그를 인정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그리고 범사에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 아닌가. 어떠한 일도 좌절하거나 불평불만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시련을 겪게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잊어버리지 말게 하려는 섭리이다. 모든 만사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 뜻대로 죽일 자 죽이고, 살릴 자 살리며, 망할 자 망하게 하고, 흥할 자 흥하게 하는 절대 주권자 하나님께 어느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세상만사가 우연히 되는 줄 알고 혼선을 빚을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주는 것은 성경을 배우고 여호와 하나님 의지하라는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 자손들,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신호가 없이는 절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고, 길을 아는 자가 없으므로 자기들 마음대로 길을 가다가는 언제 어디서 위험을 당할지도 모르고 길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놓이게 했다. 여호와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광야 길을 진행한다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그들로 깨닫게 하기 위함인데, 여호와께서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면 천하없어도 시련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많은 기적적 사건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대충 생각해 보아도 애굽에서 열 재앙을 통해서 구출 받게 하고, 그들을 쫓아오는 애굽 군대들은 자기들도 건너게 하는 줄 알고 건너가다가 결국 바닷물을 덮치게 해서 다 죽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너게 한 사건, 그리고 광야에서 물이 없을 때 반석을 쳐서 물을 마시게 하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와서 매일같이 먹게 하고, 무엇을 보아도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고 믿어야 할 자손들이다. 그런데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하는 데서 불신이 나타나게 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로 정탐하러 보낸 가나안 땅은 가나안 족속들이 엄청난 삶의 터전을 만들고 견고하게 살아가는 시대였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사백여 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나와서 광야에서 모진 고난을 겪으면서 살게 했으니, 그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인간의 계산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일이었다. 열 번도 패배하고 좌절하고 여러 가지 역경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안 믿어지니까 불신이 나온 것이다. 광야에서 지친 민족들이 그렇게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가나안 족속의 땅을 점령할 수 있겠는가. 그들 앞에 메뚜기 떼에 불가하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시련을 거쳐서 패배하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한다. 불신앙의 결과는 패배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수기14:3)
불신앙에는 두려움에 의한 고통과 원망이 따르는 법, 백성들은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울면서 지도자를 거부하고, 모든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는 전연 반대되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한다.
여호와께서 만사가 내 생각과 내 계획대로 안 되게 한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주관, 하나님의 계획대로 섭리해 간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해서 그 말씀의 능력으로 육체의 소욕을 쳐 복종시켜 성장해 가게 한다. 이에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했다. 결국 이 땅위에 살면서 육체가 죽어가는 삶이 하나님을 배우는 자 다운 신앙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