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장로님께
장로님! 그동안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평안하시지요. 저는 육십여 년 전, 장로님의 ‘꼬마 비서’예요. 글씨도 잘 쓰고 영특하다고 비서로 채용하셨잖아요. 벌써 하나님 나라에 가셨을 터인데…. 1956년 3월에 장로님이 저의 교회에 부흥회 강사로 오셔서 엄청난 역사를 일으키셨잖아요. 장로님은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분으로 생각했어요, 두렵고 떨리기까지 했으니까요. 장로님이 내 심령의 죄 덩어리를 성령의 불로 태워주신 줄 알았기 때문이랍니다. 장로님! 사실은 이제라도 실토할 말씀이 있어서 공개서한을 올리게 되었어요. 제가 장로님 곁에 머문 지 5년째 되던 1960년 여름에 장로님 곁을 떠났잖아요.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생각들을 다 말씀드리지 못하고 마음에 묻어둔 것이 있었거든요. 놀라시며 야단을 치실까 봐 그랬죠. 꾸중은 참아주세요. 지금은 야단을 치실 수 없잖아요.
난생처음으로 열차를 타고 장로님을 따라 미지의 세계로 떠났지요. 대여섯 시간 지나서 어느 시골 역에 내렸고요. 오솔길로 한 시간 정도 지나, 거친 산중 도로를 따라 또 한 30여 분 걸어서 도착한 곳이 바로 기도원이었어요. 생소한 환경을 처음 접하게 된 거죠.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 통곡 소리, 울부짖는 소리에 압도당하게 되더라고요. 장로님이 거처하시는 바로 옆방을 숙소로 정해 주셨지요. 그날부터 장로님의 비서 역을 하게 되었거든요. 그해 4월에 성경고등학교에 입학까지 시켜주셔서 날뛸 듯이 기뻤답니다. 성경 말씀대로 살아서 성자가 되려는 꿈과 희망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죠. 열심히 공부했거든요. 지금까지의 죄는 다 성령의 불로 타버렸으니까 앞으로만 죄를 범하지 않으면 된다고 다짐하면서….
장로님의 비서 일이 그리 많지 않아 사무실 사환 역까지 맡겨주셨어요. 하루는 참한 여학생이 와서 학생증을 발급해주라고 하기에 접수했거든요. 이상하게 제 얼굴이 붉어지고 마음이 두근거리는 거예요. 그 순간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는 말씀이 생각났어요. 큰일 난 거예요. 성자가 되어야 하는데! 또 성령의 불을 받아야잖아요. 저녁 늦게 ‘채플’ 강당에 가서 엎드려 회개하기 시작했답니다. ‘주여! 이 죄인 또 간음했으니 육신의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주세요.’라고 애원하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손바닥으로 마루를 치면서 통곡했거든요. 손바닥이 터져 마룻바닥에 피가 뿌려지기까지 울부짖었죠. 그런데 죄 타는 냄새가 나지 않는 거예요.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어요.
사라졌던 고민과 갈등은 다시 시작되고 성자의 꿈과 희망은 희미해지기 시작했죠. 세월이 갈수록 더욱 그러했답니다. 선생님들은 제가 공부를 매우 잘한다고 등반을 시켜주어서 2년 만에 졸업하고 신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어요. 신학을 하면 모든 고민과 갈등이 해소되고 성자의 길을 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거든요. 당시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 저명한 목사님들이 교수였잖아요. 성자에 대한 꿈과 희망이 다시 부풀 수밖에 없었어요. 수업 시간마다 교수님들의 강의를 열심히 듣고 필기하면서 새로운 정보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어요. 학기가 거듭될수록 머리는 더욱 혼란스럽더군요. 교수님들의 강의내용이 상충되기 때문이었죠. 예를 들면, 장로교 교수님은 예수의 피 공로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하고요. 감리교 교수님은 천국은 침노하는 자만이 뺏을 수 있다면서 열심히 노력해야 천국에 간다는 거예요. 침례교 교수님은 침례를 받아야 거듭난다고 하고요. 성결교 교수님은 믿고 죄를 용서받은 후에는 범죄 하지 말고 성결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답니다. 마음으로 간음죄를 범했으니까요.
신학을 하면서 고민과 갈등은 더욱 깊어졌어요. 아무것도 정리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죠. 제 상태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교수님들은 칭찬하기 바빴답니다. 학점은 거의 ‘A’ 학점을 주시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인데 교수님마다 ‘A’ 학점을 주신 거죠. 당시는 신학교 교수 방법이 일방적이라 이해되지 않아도 질문할 수 없었거든요. 하기야 지금도 그렇지만요. 질문 잘못하면 학점을 받기 힘들잖아요. 교수님들의 의견에 따라 또 등반하게 되었답니다. 3년제 신학교를 2년 만에 졸업했거든요. 더 가르쳐줄 것이 없었나 봐요. 고민과 갈등은 더욱 심하고 깊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배울 것은 다 배웠는데, 제 문제는 하나도 풀리지 않았거든요
신학교 졸업 후. 산 계곡에 있는 바위 위에 주저앉아 고민하다가 기도하고 서글픈 찬송을 부르기도 하며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답니다. 고향으로 가서 농사하며 소박하게 살 것이냐? 아니면 서울로 올라가 다시 진리 탐구에 매진해 볼 것이냐? 어느 집사님이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입학해 고학하며 공부하도록 주선해 주겠다고 하셨거든요. 밤에 단잠을 못 이루고 밤을 지새우기 수개월, 그날도 여전히 산 계곡을 찾아 기도하다가 울면서 방황을 했답니다. 잠시 바위 위에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백론불여일행(百論不如一行)’이라는 글귀가 생각나더군요. 과거 등 너머로 읽혀온 짧은 한문 지식이 좀 있었으니까요. 맞아 논(論)자를 지(知)자로 바꾸어 ‘백지불여일행(百知不如一行)’ 곧 백 가지를 아는 것이 한 가지 실행하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까지 배워도 문제가 풀리지 않으니 한 가지라도 실행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얻고 결심을 하게 되었지요.
장로님! 5년 가까이 장로님 곁에서 사랑을 받으며 공부를 했어도 제 문제의 해답은 하나도 얻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므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며 살아온 것도 많고요. 그렇다고 장로님 앞에 실토할 수도 없잖아요. 배은망덕 하는 행위로 비칠 수도 있으니까요. 아쉽지만 장로님 곁을 조용히 떠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틀림없이 ‘이놈이 공부 좀 하더니 교만해졌다’라고 책망하실 거라는 생각에서였죠. 지금 생각하면 제가 너무 무례하지 않았나! 하는 자책을 하거든요. 지금이라도 말씀을 드려야 제 마음이 편할 것만 같아서 이 글을 올린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뵙게 되면 너그럽게 용서해주세요. 저도 뵙게 되면 꼭 용서를 구할게요.
2020년 사랑받았던 비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