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대 대장님께
대장님!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정말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벌써 60여 년 전이니까요. 어쩌면 편안한 안식에 드셨을지도 모르는데 공개서한을 띄우네요. 대장님은 기도원 관악대 책임을 맡아 운영도 하며 지휘도 하셨죠. 제가 1956년 8월에 처음으로 참석한 ‘심령대수련회’ 첫 시간에 대장님은 하얀 ‘가운’을 입으시고 덩실거리며 ‘색소폰’을 연주하시는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했거든요. 어쩌면 대장님은 물론이지만. 대원들 모두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로 보였으니까요.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끝내 잊지 못하고 공개서한을 띄우게 되었답니다.
대장님! 고마운 일이 있어요. 제가 신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대원으로 발탁해 주셨잖아요, 사실 대장님처럼 ‘색소폰’을 연주하고 싶었지만, ‘클라리넷’을 연주하게 하셨지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으니까요. 그때 저는 성자의 꿈에 마음이 몰입되어 있었거든요. 열심히 연습하는 것을 보시고 자질을 타고났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으셨거든요. 애송이 대원을 분위기에 따라 독주하도록 배려하기도 하셨고요. 이른바 성스러운 관악대원이 되었다는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어요. 죄로 인해 성자의 꿈이 희미해져 가는 예감을 가슴 가득히 채우고 있었을 때였으니까요.
성경고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다양한 나팔들로 구성된 관악대의 연주는 저를 완전히 황홀경에 빠지게 했었어요, 대장님은 관악대가 분위기에 따라 낮거나 높게, 느리거나 빠르게, 여리거나 웅장하게, 때로는 갑자기 ‘잼버리’ 마찰음 등으로 연주하도록 지휘를 하셨죠. 대장님의 지휘에 따라, 만 수천여 명에 달하는 성도들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상치 못할 반응을 보았거든요. 이른바 성령의 충만한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 셈이죠. 관악대의 연주에 따라 성도들은 차분하다가 들뜨기도 하고, 긴장하다가 한숨을 쉬기도 하고, 느긋하거나 조급하기도 하고, 소름 끼치다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놀라다가 울기도 하는 변화무쌍한 분위기였죠. 그때 당시 저는 시골 소년으로 순박한 촌뜨기였으니까요. 처음 겪는 분위기여서 이성적인 고상한 생각 따위는 하지 못했으니까요. 순식간에 감성이 고조된 대중 분위기에 동화되어 이른바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체험했거든요.
대장님! 세월이 흐르면서 해마다 반복되는 분위기에 대한 권태감이 밀려오더라고요. 물론 의혹도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요. 어떻게 연례행사인 수련회 때 관악대의 연주가 있으면, 성령의 역사가 강렬하게 일어나고, 관악대의 연주가 없는 ‘채플’ 강당에는 성령의 역사가 미약하게 일어날까! 혹시 수련회 때는 수많은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채플’ 시간은 수가 적은 학생들의 기도는 상달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수련회는 집회 시간이 길고, ‘채플’ 시간은 집회 시간이 짧아서일까! 성령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일까!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실 때도 몇 날을 기다려야 하지 않았는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성령도 공간의 제약을 받으시는가! 확답을 얻을 수 없는 의혹만 깊어갔거든요.
대장님! 저의 고민과 갈등이 공감되시나요? 당시 대장님을 만나 고민과 갈등 또는 의혹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웠어요. 대장님은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대가셨잖아요. 저는 당시 음악에 대해 아주 생면부지였거든요, 슬픈 노래를 부르면 슬퍼지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면 즐거워지고, 혁명적인 노래를 부르면 도전정신이 강해진다는 상식 정도였으니까요.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뇌리에 분명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지요. 성자의 꿈과 희망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고요. 한숨은 거듭되고 눈물은 마를 날이 없고, 살아야 하는 이유나 목적도 사라져가고, 먼 하늘만 자주 바라보며 한숨짓는 것이 일상이 되었으니까요.
대장님! 살아 계신다면 당장 뛰어가 만나보고 싶어요. 왜 그 당시 저에게 가르쳐주지 않으셨냐고 따지고 싶은 심정에서죠. 전문적인 대가셨으니까 다 알고 계셨을 것 아니에요. 음악이나 기악이나 모든 짐승의 울음소리까지도 인간의 감성을 순화하거나 격동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고 알려주셨으면, 저의 황금 시기에 대한 낭비를 많이 줄였을 것 아니에요. 대가시면 당연히 무지한 자들을 일깨우는 사명이 있잖아요. 정말 대장님이 원망스럽고 밉기까지 했거든요. 지금은 아니지만….
대장님 덕분에 음악이나 소리에 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기도원 수련회 때 갖게 된 의혹의 시각으로 판소리 전문가가 명창을 부를 때나, 성악가가 민요나 명곡 또는 고전음악을 부를 때나, 가수들이 트로트나 대중가요 및 팝송을 부를 때나. 관현악단의 대연주회가 진행될 때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어요. 그 결과 황금 같은 결론을 얻게 되었거든요. 대장님! 인간은 감성을 앞세우면 짐승이나 다름없잖아요. 오래전 후배 선교사님의 초청으로 남아공을 방문해서 말씀을 전한 적이 있어요. 내 의도와는 달리 남아공 목사님들이 3∼4백 명이 모이셨는데, 제가 도착하기 전에 벌써 이른바 성령 충만함이 이루어진 거예요, 춤을 추며 찬송도 부르고, 이른바 입신해서 넘어져 있기도 하고. 벌벌 떨기도 하고, 장내는 수라장 상태였어요. 정말 성령의 역사였을까요? 절대 아니죠. 감성의 격화 현상이었어요.
요즘 학자들이 인간은 100% 짐승이라고 주장하며 가르치고 책도 펴내잖아요. 감성문화를 조장하는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세계를 앞당기는 길이라고요.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하고, 죽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잖아요. 인간이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감성적인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얼빠진 말을 내뱉기도 하고요. 창조론을 부정하고 진화론을 주장하기 위함이죠. 모두 무신론자들의 궤변에 불과한 주장이거든요.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분명하게 계시한 성경에 대한 무지에 기인한 결과가 아닐까요! 성령을 받겠다는 ‘수련회’에서 동물적이고 무신론적인 감성만을 고조시키는 행태는 ‘아이러니’가 아니에요? 화내실 분이 많으실 거예요. 특히 ‘영성훈련’이나 ‘영성운동’을 하는 부흥사들이…. 아직도 그러한 운동들이 대세를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공개적으로 밝히기를 주저한 이유이기도 해요. 대장님도 화내실지 모르죠.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은 사실이잖아요? 화 푸시고 부디 안녕히 계세요.
2020년, 애송이 대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