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당착과 견강부회
‘자가당착’이란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고 모순될 때를 이르는 말이고, ‘견강부회’란 확실한 근거도 없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끌어대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근래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이러한 고사성어가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어디 정치권뿐이겠는가? 이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심각한 부패의 모습이다.
국가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위정자들과 힘 있는 자들의 ‘자가당착’과 ‘견강부회’는 모든 국민들을 짜증스럽게 만든다. 심각한 불법을 저지르고도 사과하기는커녕 국민들을 위한 일이었다고 주장하는 파렴치함, 자신들은 권력투쟁의 희생자들이라며 백일하에 드러난 부정선거 자체를 부인해 버리는 철면피,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도 보란 듯이 행하는 야만적인 폭력성,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여야를 막론한 유치함까지. 이 정도라면 이미 그들은 국민들을 위한 정치인이 아니다.
그들에게 국민이란 단지 그들의 허기를 채워주기 위한 먹잇감에 불과하다. 정치가를 위해서 국민들이 존재하고, 판검사와 변호사를 위해서 억울한 자들이 존재하고, 의사를 위해서 아픈 자들이 존재하고, 교사를 위하여 학생들이 존재하고, 사회복지사를 위하여 어려운 자들이 존재한다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회인 것이다.
이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도 이런 현상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가 없다. 수많은 교회의 지도자들 역시 세상의 위정자들처럼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성도들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려고 애쓰고 있지 않은가?
“우둔한 자의 입에서 나오는 잠언은 술 취한 자의 손에 든 가시나무와 같다(잠26:9)”는 말씀이 있다. 아무리 진리를 포장한 그럴듯한 말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우둔한 자들의 가르침은 자신들의 사욕을 추구하기 위한 잘 포장된 말에 불과하다. 그들은 현란하고 달콤한 말로 성도들을 유혹하지만 결국은 그 말들은 가시나무가 되어 자기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쓰라린 상처를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들은 오직 참된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밝혀 주어서 모든 성도들이 세상의 헛된 일을 멀리하고 참된 신앙 안에서, 진리 안에서 자유와 평강을 누리며 살도록 가르치는 일에 착념해야 한다. 이것은 교회 지도자들이 주님 안에 있는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딤후1:7)을 가질 때에 가능하다.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은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딤전4:12) 성도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교회 지도자들의 삶이 세상의 위정자들처럼 ‘자가당착’과 ‘견강부회’로 귀결된다면 이는 교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 일이다. 교회 밖에서도 교회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제 교회는 그보다 더한 개혁을 추구한다 해도 시원치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때에 아직도 교회와 성도들을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려고 안달하는 교회 지도자가 있다면 지금 당장 그 교만한 뜻을 접어야 한다. 교회는 자신의 이상과 사욕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