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게 포기하는 즐거움
경제학에서 ‘매몰비용’이라는 것이 있다. ‘매몰비용’이란 이미 지불해버려서 되찾기가 불가능한, 포기해야 하는 비용을 말한다. 영화표를 사서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영화표를 구매한 돈은 회수가 불가능한 ‘매몰비용’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니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형편없는 영화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끝까지 참고 앉아서 영화를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형편없는 영화를 보는 그 시간에 사람들은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나머지 시간마저 계속 불행한 시간에 갇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비용과 노력에 대한 미련을 깨끗하게 버리고 중간에 나오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포기에 대한 결정’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소소한 이익이나 습관에 사로잡혀 쉽게 결단하지 못한다. 혹시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 우리 기독교인들도 이와 유사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고 난 후에 자신이 과거에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을 하루아침에 배설물로 여겼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은 그가 가치 있게 여기고, 소중하고 유익하다고 여겼던 과거의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데 주저함이 없도록 했던 것이다. 그 모든 배설물들을 버린 후에 그는 얼마나 자유하고 홀가분했을까?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
근래에 나는 생활 속에서 ‘깨끗하게 포기하는 즐거움’에 대해 조금씩 배우고 있는 중이다. 집 안 구석진 곳에 쌓아두었던 물건들을 꺼내 하나씩 버리기도 하고(언젠가 중요하게 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주 오래 전부터 보관해 두었던 것들이다.) 일상적으로 습관화된 웹서핑을 그만두기도 한다. 물론 그동안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을 버린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나에게 생각하지도 못했던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안겨주고 있다. 왜 결국에는 버릴 물건들을 끌어안고 복잡하게 살았을까?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들은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결정에 직면하게 된다. 어제의 삶이 성경적이지 못했다면 오늘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이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버려야할 날이다. 세상의 무가치한 것들에 사로잡혀서 오늘도 무기력한 삶을 계속 살아갈 수는 없다. 어제의 잘못된 선택은, 날카로운 칼로 도려내듯 오늘 이 순간에 깨끗하게 청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잘 안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길을 기뻐하시면 그 분의 손으로 붙들어주실 것이 너무도 분명하기에 또 다시 해보자. 그래서 새롭게 주어진 오늘, 과거의 부질없는 것들을 깨끗하게 포기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즐거움을 맛보며 살아가자.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