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도사님에게
“잘못된 교회 정치는 부패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잖아요.”
전도사님! 정말 오래되었군요. 그동안 주안에서 평안하시겠죠? 전도사님은 이른바 명문신학대학교 학창 시절, 동료들과 함께 ‘명동 모임’을 주선해서 책임을 맡으셨고, 나는 성경 공부를 인도했었죠. 정말 아름다운 만남이었는데, 헤어짐이 인간 보기에는 아름답지 못했잖아요. 나도 이단의 신분으로 전도사님에게 부담이 될까 봐 연락하지 않았고, 전도사님 역시 많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겠죠. 지금도 상처받은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있는 상태에요.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한때는 한국 교회로부터 왕따를 당하며 살기도 했어요. 전도사님은 다 알고 계시겠죠.
1980년 1월, ‘청평 모임’ 사흘째 되던 이른 아침, 전도사님은 젊은 장로님과 함께 저를 찾아오셨잖아요. 무릎을 꿇고 앉으셔서 편히 앉으라고 권해도 사양하셨고요. 전도사님의 견해와 모임에 참석한 동료들의 동향도 일일이 전해주었지요. 내용의 핵심은 참석자 모두가 한숨을 쉬고 있다는 거였어요. 로마서 공부를 통해 모두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잘못 가르친 것을 알고 너무 괴로워하고 있다는 거였잖아요. 제가 연구한 노트를 가지고 가르쳤다면 모두 거부하며 반발했을 거라고 했고요. 함께 성경을 읽어가며 논리적 흐름을 따라 공감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설득되었다는 거였어요. 강의자의 인품이나 권위에 눌려 설득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설득되었다는 뜻이었어요. 너무 당연하잖아요. 나도 학생들이나 다름없이 누비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방바닥에 둘러앉아 강의도 하고, 학생들 틈에 끼어 잠도 자고 했는데 무슨 권위 있는 모습이 있을 수 있겠어요.
젊은 장로님은 지난 밤 너무 괴로워 한잠도 자지 못했다고 실토했지요. 저를 장작으로 때려죽이고 눈 덮인 산으로 한없이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고 고백했거든요. 장로님은 대학에서 ‘니체’ 철학을 전공하면서 자신의 인생관을 견고히 다졌다고 했어요. 로마서 공부를 통해 첫 시간부터 자신이 쌓아 올린 인생의 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거였지요. 이제는 도저히 복구할 힘이나 근거를 모두 상실해버렸다고 했어요. 너무 당연한 거죠. ‘니체’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의 의지적 노력으로 지상에 천국을 만들어 살 수 있다는 가설을 주장한 철학자잖아요. 성경은 영존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적 능력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기도 하시고, 심판하여 파멸하기도 하시기 때문에 절대로 비교할 수가 없거든요.
두 분의 말을 들으면서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능력을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어요. ‘맞아! 철학은 헛된 속임수에 불과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최고의 권위 있는 불변의 진리야!’ 하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교회를 개척해서 성경만 풀어 가르치려고 노력은 했죠. 주변 분위기가 모두 신비주의 신앙으로 잠식된 상황이라서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성경을 풀어 가르치면 대부분 성도는 조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병도 낫고 부자도 되고 성공하라는 말을 해야 ‘아멘 할렐루야!’ 하며 속는 줄도 모르고 좋아했으니까요. 예수께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으므로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말씀만 풀어 가르치고 있거든요.
전도사님과 만남은 제 생애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어요.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지금까지 꾸준하게 성경만 가르치며 살 수 있는 확신을 얻게 되었으니까요. 성경 공부 모임이 모두 끝난 후에 다시 찾아오셨지요. 참석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대로 끝낼 수 없다며 계속 성경 공부를 하기 원한다는 거였어요. 장소와 시간을 마련하면 가르쳐줄 수 있는지! 제 의사를 타진했잖아요. 당연히 수락했지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거든요.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목숨을 담보한 사명이니까요.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목숨을 다해야잖아요.
1980년 3월에 급기야 전도사님과 동료들의 주선으로 ‘명동 모임’이 이루어졌죠. 한주가 다르게 모여오는 참석자가 늘면서 분위기는 점점 뜨거워지게 되었지요. 질그릇에 불과한 저를 교주처럼 대하는 것이 매우 송구스러웠어요. 동료 중에는 퇴근길에 밤이 늦다고 제 가방을 들고 집 안방까지 동행해 인사를 하고 돌아가곤 했으니까요. 극구 사양해도 그럴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더라고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됐지요. 100여 명만 모여도 교주행세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매우 조심하게 되었어요. 한번은 ‘초칼빈주의자’로 소문이 돌고 있다며 한국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나더러 앞에서 깃발만 들어주면 모두 목숨을 걸고 따르겠다고 하셨거든요. 듣는 순간 깜짝 놀랐죠. 나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 한국 교회를 개혁하라는 말인가! 생각 끝에 개혁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니까 공부나 열심히 하자고 타일렀지요.
몇 달이 지난 후, 동료들과 함께 저를 찾아왔잖아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다며 오해 없이 들어주시라고 했어요. 이제는 목사님께서 좀 뒤로 앉으시고 저희에게 모든 것을 맡겨주시라는 거였어요. 교회개혁을 위한 단체를 조직하고 싶은데 앞장서달라고 해도 허락하지 않은 것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으로 짐작했죠. 저는 태연스럽게 단체의 조직이 급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바로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아직은 현행대로 진행하자는 권면과 함께 흩어졌거든요. 일반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게 되면 누가 어떻게 통솔을 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죠. 이러한 경향이 하나님의 일에 대한 사명감이 아닌 인간의 지배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제하도록 권면했거든요.
예수님 당시에 많은 무리가 따르자 제자들은 예수님의 좌 우편 자리에 관심이 있어 논란이 벌어진 사실이 있지요. 한국 교회가 은사에 따른 직임을 계급화해서 으뜸이 되려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행태가 부패의 요인 중의 하나거든요. 성경적이지 못한 교회 헌법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다스린다는 것 자체가 모순 중 모순이죠. 잘못된 교회 정치는 부패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이외에 무슨 법이 있을 수 있겠어요. 그렇잖아요? 전도사님! 지금은 목사가 되셨겠지만, 공감하신다는 회신을 기다리며 이만 줄일래요.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