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교수님께
“성경을 통해 범사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니까요.”
교수님! 주무시는 잠자리는 편안하신가요? 신학대학원 시절 관심과 배려를 많이 받은 제자예요. 어찌 그렇게 일찍 잠드셨어요? 타락한 교회 모습이 보기 역겨워서였나요? 너무 열정적으로 교회개혁을 위해 일하시다가 피곤해서였나요? 잠드신 소식을 접하고 교회개혁의 학문적 선배 한 분을 잃은 상실감이 컸어요. 학자의 생명과도 같은 정직함과 순전함을 겸비하신 대학자로서의 교수님으로 뇌리에 각인이 되었거든요. 교수님은 한국 교회가 칼빈의 개혁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며 ‘열정칼빈주의’ 라는 표제로 책도 펴내시고 교회개혁의 선봉장 역할을 감당하셨잖아요.
1980년 3월,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교수님의 지도하에 계속해서 신학을 연구하게 되었지요. 교수님의 강의가 철저히 성경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제 관심을 끌었어요. 하나라도 놓칠세라 심혈을 기울여 경청했지요. 수강 태도가 좋아서인지 교수님의 눈길을 자주 빼앗기도 했거든요. 대부분 현직 목사님들이라서 교수님의 강의는 좀 차원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더러는 ‘신학석사’ 학위에 더 관심이 있는 목사님들이 없잖아 있었지요. 목회는 목사라는 직함으로도 충분하지만 화려한 ‘액세서리’가 한몫을 하는 시대라서 그럴 수도 있잖아요. 각종 의식을 집례할 때, 목사 ‘가운’보다 박사 ‘가운’을 입는 것이 훨씬 권위확보에 도움이 되니까요.
1977년 2월에 신학연구원을 졸업할 때였죠. 별과 졸업생들이 학교 당국에 건의서를 제출한 일이 있었어요. 별과 졸업생에게는 ‘목회학사’라 해서 푸른색 '후드'를 두르게 했고, 본과 졸업생에게는 ‘신학사’라 해서 빨간색 '후드'를 두르게 했거든요. 이에 불만을 품고 차등 없이 ‘후드’를 두르게 해달라는 요구였어요. 졸업식에 참석하게 될 자신들의 교회 성도들로부터 무시를 당한다는 이유였어요. 세속적인 교회 교육제도가 교회 타락의 한 원인이 되고 있거든요. 목회자가 성경의 권위보다는 목사의 권위를 앞세우려는 것이 성경에서 너무 빗나간 것이라는 생각을 했죠. 평복을 입고 졸업식을 하든가. 졸업장이나 우편으로 전달하고 끝내도 될 것인데…!
한국 교회가 교수님의 열정과 가르침을 따랐으면 지금의 위기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운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신학의 본질보다 현실의 필요성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같이 듣고 연구해도 결과는 다르게 나타나니까요. 교수님이 ‘신약신학’ 시간에 에베소서 1장을 중심으로 삼위일체에 대해 열강을 하셨어요. 창세 전에 작정 가운데 택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성부 하나님과, 예정하신 택자를 속죄해서 구속해주신 성자 하나님과, 구속받은 성도에게 기업의 보증으로 인을 쳐주신 성령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경청했거든요.
오랫동안 성경을 연구해온 저는 에베소서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고 있었어요. 에베소서가 교회론으로 보였으니까요. 교수님은 신론적 입장에서 에베소서 1장을 설명하셨어요. 크게 보면, 성경이 하나님을 계시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교수님의 견해가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요. 다만 에베소서에 대한 구체성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교수님의 학자다운 정직함과 순전함을 믿고 용기를 냈어요. 손을 번쩍 들고 “교수님! 제 견해를 말씀드려도 될까요?”라고 하자. “그럼요 말씀하세요.”라고 흔쾌히 허락하셨어요. 에베소서 1장이 교회론적 입장에서는 교회창립의 기초에 관한 내용이라는 견해를 말씀드렸죠. 창세 전에 성부 하나님을 비롯해,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창립을 위한 기초적인 섭리를 하신 것이라고 말씀드렸거든요. 설명이 끝나자마자 교수님은 놀라시며, “옳습니다. 목사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물으시고 이어서 “어느 교회를 시무하십니까?”라고 물으셨어요. 제가 놀랄 정도로 적극적인 관심과 반응을 보이셨거든요.
그 후 교무행정을 겸하신 교수님은 제가 졸업하자마자 신학교 대학부 강사로 발탁해 주셔서 봄 학기부터 이사야서를 강의했잖아요. 많은 생각을 했지요. 혹시 교수님이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신 것은 아닐까! 행여 잘못 보시고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시지 않았는가! 아니면 제가 깨달은 견해가 올바르다고 여기셨기 때문일까! 그동안 성경을 풀어 가르치며 많은 비난을 들었으니까요. ‘다른 목사님들은 그렇지 않은데, 왜 하필 너만 홀로 독불장군이냐? 많은 신학자나 주석들도 그렇지 않은데, 혼자서 주장하게 되면 누가 믿고 수긍하겠느냐?’라는 허다한 반격을 받아왔거든요.
1982년도 제118회 이른바 장자 노회의 이단 시비에 말려들게 되었어요. 원인은 교리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내심에는 제가 대학부 강사직을 맡은 것이 선배 목사님들의 미움을 사게 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어요. 이른바 장자 노회 목사님들 중에는 한 분도 총회에서 경영하는 신학교와 대학원의 교수나 강사로 수고하시는 분이 없었으니까요. 이런 일들을 통해 총회나 노회의 부패상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교수님이 참 고맙기도 하다가도, 6년이 넘게 이단 정죄로 목사면직을 받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교수님이 원망스럽기도 했거든요. 왜 안 그렇겠어요. 그렇다고 섭섭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성경을 통해 범사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니까요.
이른바 장자 노회와 진리 투쟁이 시작된 셈이죠. 말로만 싸우면 안 되잖아요. 덕분에 책을 쓰기 시작해서 ‘성경신학총서’를 포함해 40여 권의 책을 펴내기도 했거든요. 지금도 쓰고 있고요. 하나님께서 교수님을 통해 섭리하신 은총이 아닐 수 없잖아요. 교수님이 일찍 잠드신 것이 정말 한스러웠어요. 저술한 책을 한 아름 안고 찾아가 교수님께 검열을 받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살펴보시고, “옳습니다. 맞습니다.”라고 하시며 흔쾌히 추천서도 써주셨을 거고요. 더러 신학대학교 교수님들에게 가져다드렸으나 조언 한마디도 없어요. 물론 견해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설령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조언해주기는 싫을 수도 있고요. 대부분 교회 지도자는 단독 목회에 젖어 옳은 일에도 혼자 하거나 으뜸이 되려는 습성이 농후하기 때문일 거예요. 늦었지만 잠드신 교수님께 마음에 맺힌 한이라도 풀고 싶어 공개서한을 띄우게 되었어요. 교수님! 주 안에서 편안히 단잠 주무세요.
2022년, 관심받은 제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