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목사님께
“성경의 권위를 능가하는 그 무엇도 있을 수 없잖아요!”
목사님! 주님의 은총 가운데 평안하시죠? 사모님도요? 오늘도 목사님을 잊지 못하고 이렇게 공개서한을 올립니다. 제가 오늘이 있기까지 목사님을 통해 받은 영향이 매우 크거든요. 목사님은 저의 본보기가 되어주기도 하시고 결정적 순간에는 새 힘을 얻게 해주실 뿐 아니라 지도편달을 아끼지 않으셨기 때문이죠. 그런데 요즘엔 제가 철이 좀 들었는지 선배 목사님께 너무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매우 무거워 직접 찾아뵙기가 주저되기도 하답니다.
제가 일명 ‘장자노회’로부터 소위 ‘이단’이라는 누명으로 목사면직을 당해 목회를 포기하려고 했을 때였어요. 제일 먼저 문뜩 생각나는 분이 바로 목사님이셨거든요. 성경을 확실히 알고 싶어 10여 년의 신학 연구를 마친 후에 늦게야 목사고시에 응시했을 때였지요. 교회 법리학자이신 목사님이 고시를 끝낸 저를 부르셔서 노회 역사상 최초로 ‘교회정치’에 만점을 획득했다고 극찬을 해주셨거든요. 억울하게 목사면직을 당했을 때 목사님의 지도를 받아 총회에 항소해야겠다는 각오가 생기더라고요. 찾아뵙고 목사님의 친절한 지도를 따라 항소장을 작성하여 총회에 제출하게 되었죠. 그 결과 7년 만에 총회 재판국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았답니다.
일명 ‘장자노회’ 재판부가 지목한 죄목은 율법에 관한 문제였잖아요. 안식일과 십일조 및 성전과 금식에 관한 문제였죠. 사실 성경적으로 또는 신학적으로 전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죄목으로 삼아 목사직을 박탈한 것은 노회 재판국의 교권 남용에 불과했거든요. 성경은 물론 교회법으로도 예배 모범에 ‘안식일’이 아닌 ‘주일’이라고 했고요. ‘십일조’가 아닌 ‘헌금’이라고 했고요. ‘성전’은 교회당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킨다고 했고요. ‘금식’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금식할 필요가 없다고 했거든요. 성경적 또는 신학적 및 교회법적으로 전혀 잘못된 바가 없으나 선배들이 행해온 전통적인 관습에 따르지 않는다고 목사직을 파면했잖아요. 노회의 권위가 성경의 권위를 능가하는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하게 되었죠.
당시 목사님은 어렵고 힘들 때 저의 큰 버팀목이 되어 주셨어요. 그 후 하나님만을 의지할 뿐 아니라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외로움을 달래며 살 수밖에 없었어요. 목회 초년생으로 어디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어도 지상에는 제 편을 들어 줄 분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오직 목사님만이 저의 편을 들어 주시며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잖아요. 그리고 저를 변호하는 장문의 글도 정성껏 써서 주시기도 했고요. 그 글을 지금도 잘 보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가끔 꺼내어 펼쳐보며 목사님의 자상한 배려를 잊지 않고 헤아려보곤 한답니다.
지상교회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를 능가하는 그 무엇도 절대로 있을 수 없잖아요. 교회 전통이나 관습은 물론 교회법에 따른 목사나 당회 또는 노회나 총회가 권위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경만이 절대 권위를 지니고 있지요. 오랫동안 신학을 하고 성경을 연구하면서 지상교회의 많은 모순을 보기도 하고 경험도 하게 되었어요. 지상교회 헌법은 어디까지나 성경의 근거에 의해 제정되어야 효용 가치가 있는데도, 문제는 성경을 성경대로 잘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제정된 총회 헌법은 성경에서 빗나간 조항들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기 마련이죠. 성경에서 빗나간 총회 헌법의 기초 위에 세운 지상교회나 그 전통이나 관습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잖아요.
1978년 10월에 목사 안수를 받고 ‘옵서버’로 총회에 참석하여 견학한 사실이 있어요. 총회에서 의장이 가부로 결의된 안건을 선포하려 하자, 목사님께서는 손을 번쩍 드시고 ‘의장! 성경이요’ 하며 발언권을 얻어 결의를 무산시키는 장면을 직접 본 일이 있어요. 총회 결의나 헌법보다 성경이 우선하는 실제 상황을 총회 현장에서 직접 보고 큰 감명을 받은 바 있어요. 그때 목사님에 대한 깊은 인상이 제 뇌리에 각인되었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장 중시하는 목사님으로 각인이 되었어요. 마음으로는 가까이 모시고 많은 지도를 받고 싶기도 했죠. 하지만 제 처지가 너무 초라한 새내기 목사로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살아왔을 뿐이에요.
극심한 마음의 상처를 안고 묵묵히 성경을 연구하면서 한국교회에 너무 많은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도저히 흘려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 ‘성경강론전집’을 포함한 ‘성경신학총서’와 기타 수십 권의 단행본을 집필해서 출판했지요. 목사님께 감수를 받고 싶어 무례한 줄 알면서도 한 아름 가져다드렸거든요. 특히 성경이 아닌 교회 헌법에 따라 지상교회를 세우고 다스리는 것은 이해하기 너무 힘들었어요. 급기야 목사님께 교회개혁에 대한 당위성을 말씀드렸잖아요. 목사님은 교회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성경적 견해를 글로 쓰라고 명하셨어요. 교회 법리학자이신 목사님께서 명하신 말씀에 힘을 얻어 ‘교회개혁론’을 집필해서 출판할 수 있었지요.
과제로 명하신 ‘교회개혁론’을 목사님께 직접 드릴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어요. 한편 책망을 들을 염려가 없지는 않았지만, 목사님께서 명하신 말씀에 순응했다는 기쁨이 더욱 컸거든요. 다행히도 크게 책망은 없으셨고 교회개혁이 참으로 어렵다는 의견만을 개진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목사님께서도 교회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계신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지요. 사실 교회개혁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다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밝혀진 옳고 그름에 대해 언급할 뿐이잖아요. 예수께서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7)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죠.
목사님! 한평생 한국교회가 성경 진리 터 위에 질서대로 세워져 올곧게 성장하기를 염원하며 살아오신 고결함을 한껏 닮고 싶은 마음에서 이 글을 올리게 되었어요. 서구교회가 몰락하고 한국교회 역시 그 뒤를 이어 가는 듯싶어 안타깝지만, 능력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기를 소망하고 있어요. 선배 목사님! 사모님과 함께 부디 주 안에서 평안하시기를 소원합니다.
2022년 여름, 아껴 주신 후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