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은혜 아래 거둔 죽음의 승리, 삼손
성경 속의 인물 (13)
SK로 이적되었지만 그 유니폼 로고를 LG로 읽었다던 야구 선수가 있었다. 친정팀 LG를 상대로는 투구하기 싫었던 프로답지 못함을 밝히며 보장된 억대의 연봉을 포기하고 깨끗한 은퇴를 선언했던, 마무리로 등판할 때마다 긴 갈깃머리 휘날리며 씩씩히 달려 나가던 ‘야생마’ 이상훈에게 2002년은 마지막 한국시리즈였다. 3게임을 연속으로 던졌기에 지쳐 있었고 김성근 감독은 차마 또 등판시킬 수 없어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그는 글러브를 챙겨 들고 불펜으로 뛰쳐나갔다. 어디 가냐는 질문에 던질 투수가 저밖에 없지 않느냐 반문한 그에게 감독은 나갈 수 있는지를 조심스레 물었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갈 수 있겠냐고 묻지 마시고 나가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별명 ‘삼손(Samson)’을 백넘버 위에 달기도 했던 그의 팀을 위한 자기희생, 하지만 때로 무모하리만치 불붙던 열정에서 수차례 고삐 풀린 모습으로 좌충우돌하던 마지막 사사 삼손을 연상하기도 했다. 추악하고 불결한 삶이었으나 여호와의 은혜로 다곤 신전에서 동족을 위해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삿 16:30)’ 외치며 승리의 최후를 맞았던 삼손, 잉태치 못하던 이를 잉태케 하신 전능 아래 출생한 그의 고향은 블레셋과의 접경지였던 단 지파의 소라 땅이었다. 도탄(T. Dothan)의 연구 성과에 따르자면 B.C. 12세기경 에게 해 크레타 섬으로부터 남하해 히타이트를 무너뜨리고 이집트 지역까지 진출한 강력한 해양 민족이 있었고, 그 일파였던 블레셋 족은 남부 팔레스타인 해안을 장악하고 가자(Gaza) 등의 5개 도시를 세웠다. 여호수아의 점령이 시작되던 즈음 내륙으로 침투했던 이들의 채색된 도기나 철제 무기는 이스라엘의 조잡한 도기나 청동제 무기보다 확연한 우위에 있었다.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임한 이전 사사들과 달리 삼손의 전법이란 객관적 분석을 깡그리 무시한 ‘솔로 플레이’였다. 사자를 맨손으로 찢는 광경을 우습게 넘어, 홀로 나귀의 턱뼈 달랑 움켜쥐고 철기로 무장했을 천명을 몰살시켰다는(삿 15:16) 라맛 레히의 기사를 대하자면 삼손의 행적을 영웅화된 허구의 민담으로 간주하는 진보주의자들의 분석에 관심이 쏠리기도 한다. 그러나 삼손의 블레셋 공격에 관한 모든 성경 기록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여호와의 영 혹은 권능’이 그와 함께 했음을 전제하는 구조적 특징이다. 그가 이방 블레셋 여인과 율법을 범하며 빠져든 타락 또한, 이스라엘의 구원에 있어 삼손이라는 한 인물의 완력이 부각되기보다 오직 여호와 능력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하신 의도가 섭리의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장부의 뼈 방망이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맨손일지라도 만 명을 능히 잠재우게 하실 이가 성경의 허다한 기적의 역사로 계시된 절대주권자 아니셨던가.
과도한 혈기로 늘 궁지에 몰리던 삼손은 제 발로 푸줏간에 들어간 미련한 소처럼 결국 음녀의 길로 치우쳐 머리칼이 잘리고 두 눈이 뽑힌 이방인의 놀림감으로 전락한다. 비천한 패배로 삼손을 몰락케 하신 이 여호와이셨으나, 명예로운 죽음으로 승리케 하신 이 또한 여호와이셨다. 기쁘게 분배받은 땅이었지만 이후 사사시대에 울타리처럼 둘러싼 여타 민족들은 신앙만을 제외하고는 이스라엘보다 막강한 존재들이었다. 생사의 위협과 우상의 유혹을 진멸치 못하실 이 아니나, 옆구리의 가시로(삿 2:3) 남기신 채 기나긴 타락과 회개의 연단을 반복하게 하심은 이스라엘 너의 힘과 능으로는 필히 좌절할 것임을 절감케, 나아가 제 삼일에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일으키실 여호와만을 의지케 하려 하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