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5-12-13 19:1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하스모니아 왕조의 성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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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였던 측천무후는 능력 위주의 인재 등용을 통해 당의 전성기를 기초한 인물이었다. 45년의 재위기 동안 농민 반란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던 예에서 보듯 생산력 증대를 토대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충실한 국방력을 갖추어 내외의 안정을 기하였음에도, 아이러니하게 그녀를 기리는 비석은 한 글자도 새겨지지 않은 무자비(無字碑)로 세워져 있다. ‘무위의 화’라는 부정적 용어가 대변하는 남존여비의 유교적 사관이 배경으로 언급되나, 당 왕조를 중단하고 개창한 주 왕조의 황위에 올라 권력을 장악하기까지 일으킨 인정 없던 피바람도 한 이유였으니, 그녀에 의해 죽음을 맞은 23명의 친인척 중에는 내쫓긴 두 아들에 더해 (엄마의 권력욕을 위한 제물이 된) 갓 태어난 여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바리새파의 뿌리가 된 율법주의적 하시딤의 일원이었으나 통치 후반 친헬라적 사두개파에 힘을 실어주었던 요한 히르카누스는 아들의 이름 또한 아리스토불루스, 안티고누스, 알렉산더의 헬라식으로 개명시켰다. 히르카누스는 처에게 통치직을, 장자에게 대제사장직을 물려주었으나 이러한 구도에 만족지 않았던 아리스토불루스는-권력을 둘러싼 고금의 매정한 상례처럼-어머니를 투옥해 굶겨 죽이고 자신보다 인기 높던 동생 안티고누스를 살해하였다. 아버지보다 더욱 헬라화 정책에 몰두하며 헬라 폭군들의 흉악함을 따르던 그는 북쪽 국경선의 확장과 더불어, 587년의 예루살렘 파괴 이후 48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유다의 왕을 자칭하게 된다.
골육상쟁의 자책감으로 미쳐버린 아리스토불루스 1세(주전 104~103)가 피를 토하며 죽자 아내 살로메 알렉산드라는 감옥에 갇혔던 남편의 나머지 형제들을 풀어주었고, 그중 알렉산더 얀네우스(103~76)는 형사취수(兄死娶嫂)의 풍습처럼 14세 연상의 형수와 결혼하고 왕위에 오른다. 그의 왕국은 당대의 주도권이 헬라에서 로마로 교체되는 과도기적 정세에 힘입어 과거 다윗과 솔로몬 왕국의 영역에 맞먹는 규모로 팽창되기에 이르나, 과부와 결혼할 수 없던 율법 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제사장직까지 겸임한 파렴치를 향한 열매 세례에 대응하여 6천여 명을 학살하고, 계속된 반란과 내전 중 희생된 5만도 모자라 바리새파 800여 명의 십자가형을 즐기던 잔혹성은 맏형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광기였다.
동족상잔의 소모전을 겪은 알렉산더는 죽음을 앞두고 부인 살로메에게 바리새파와 화해할 것을 권고했고, 이후 여왕이 된 살로메 알렉산드라(76~67)는 야심 많던 둘째 아리스토불루스 2세에 비해 무던했던 첫째 히르카누스 2세를 대제사장직에 앉힌다. 바리새파는 사두개파를 중용했던 이전 통치자들과는 달리 율법의 가르침을 중시했던 살로메의 집권을 적극 지지했고, 살로메 또한 과거 내전의 교훈을 새겨 타협을 종용하면서도 바리새파를 보다 선호하였다. 정치적 우위에 더하여 게루시아(훗날의 산헤드린)로 불린 공의회의 주도권까지 쥐게 된 바리새파는 자신들이 당한 박해를 되갚고자 했고, 재차 일어난 내란의 조짐 가운데 사두개인이 지지하던 아리스토불루스 2세와 바리새인이 지지하던 히르카누스 2세는 어머니 살로메가 숨을 거두자마자 왕위를 놓고 여리고 근처에서 형제끼리 맞붙게 된다.
말라기 선지로부터 메시아 초림까지 선지자의 맥이 끊겼던 400여 년간을 신구약 중간기로 통칭한다. 성경이 침묵하는 이 기간의 역사는 결론적으로 참 왕 그리스도께서 왜 필히 오셔야만 하는지를 밝힌 간접적 웅변이었으니, 모략과 폭력이 판치던 거짓 왕가의 말로는 왕이 없으므로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삿 21:25) 사사시대 말기 혼돈의 반복이었다. 자기 백성에 반란죄를 물어 십자가 처형을 집행하면서 연회를 즐기던 비정한 권력과 달리,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자원함으로 그들을 사랑할 것(호 14:4)’이라 언약하심을 따라 대속의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는 죄인 된 자기 사람을 끝끝내 보듬은 자비의 왕이었다. 죄의 법을 섬기는 땅의 고달픔은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전연 무능한 종임을 고백하게 하는 선한 도구이기에, 은총론의 교부 어거스틴은 ‘오! 복된 죄악’의 심오한 역설을 높여 찬양했으리라.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재규 자유기고가

하스모니아 왕조의 몰락과 로마의 등장
하스모니아 왕조의 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