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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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분야의 선구이자 15개 국어에 능통한 어학의 천재로도 유명한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에게 트로이의 꿈을 심어준 것은 어린 시절, 목사이면서 고대사에 관심이 많던 아버지가 선물한 한 권의 책이었다. 십 대 중반부터 고단한 장사의 생업으로 힘겹던 그에게 어느 취객의 「일리아드」 낭송은 꿈을 상기(想起)하는 계기가 되었고, 피곤한 가난 중에도 다락방에서 어학에 매진하며 사업의 성공을 이루어 꿈의 실현을 위한 경제력을 갖춘 때는 40대였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 그는 나이 50에 가까워서야 현 터키 소재의 히사를리크(Hisarlik) 언덕에서 오랜 열망의 첫 삽을 뜬다. 신화에 불과하던 트로이를 찾고자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면서도 모든 재산과 노력을 쏟던 슐리만은, 기어코 트로이 및 미케네를 찾아냄으로(발굴된 9개의 지층 중 그가 확신한 2층이 아닌 7층이 트로이로 판명되었으나) 문학적 허구가 아닌 실재의 역사로 그리스 선사 시대를 증명해 내었다.
선민의 첫 조상 아브라함의 출발지 갈대아 우르(창 11:31, 느 9:7) 또한 19세기까지 허상처럼 취급되던 지명이었다. 70인역 성경이 우르를 빼고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건설자인 ‘갈대아인의 땅’으로만 언급했고 갈대아란 명칭 자체가 아브라함보다 후대인 B.C. 11세기부터 언급되기 시작했으므로 더더욱 학자들은 성경 기록을 신뢰하지 않았으나, 20세기에 이르러 영미 합동 탐사반을 이끈 레너드 울리의 발굴(1922~34)로 거대한 우르의 실체가 드러났다. 성경의 바벨탑 묘사와 유사한 층계식 신전 지구라트 꼭대기에서 달의 신 난나(Nanna)가 주신(主神)으로 섬겨졌는데, 구조물의 모든 벽들은 미세한 볼록의 곡선 형태로 안정감을 구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법은 1500년 이후 엔타시스(entasis) 기둥의 파르테논 신전으로 이어진다. 울리는 우르인들의 발달된 건축 및 수학, 천문학의 지식이 이집트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판단했으며 아울러 2층 높이의 주거지와 학교 시설, 상당히 정교히 제작된 각종 장신구, 효율적으로 정비된 하수 시설 등은 아브라함이 거친 유목민 출신이 아닌 세련된 문명의 혜택을 누리던 이였음을 추측케 한다.
동양의 음양설과 달리 고대 근동의 달의 신은 남신이자 태양신보다 우월한 존재였으며, 아브라함 일가의 경유지로 무역의 요충지이던 하란 역시 월신의 숭배지였다. 이처럼 신성시되던 초승달은 무함마드가 알라에게 계시를 받던 때와 헤지라(A.D. 622)의 길을 인도하던 때에 별과 함께 떠올랐다 하며, 오스만 제국의 상징을 거쳐 현재 이슬람의 상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각설하여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다는 회고(수 24:2)처럼 선민의 뿌리는 말하자면 이교도였다. 더구나 데라는 전설에 따르자면 월신의 상을 제작하는 일이 직업인 적극적 우상 숭배자였다.
문명의 때가 덜 탄 곳으로부터 선민의 시조를 선택하실 수 있는 전능자께서 이교 제례가 만연하던 메소포타미아 하부에 주목하신 역사를, ‘예수를 영접했으니 거룩한 신앙의 삶을 살 것’을 강조하는 현 기독교 주류의 윤리관으로 설명하기에는 어색할 뿐이다. 불신앙과 신앙 모두를 영광 선포의 방편으로 선하게 이끄시는 섭리 아래 언약과 무관한 데라의 삶은 하란에서 마쳐졌으나,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여호와의 일방적 언약이 내려진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세겜에 정착하게 된다. 동서로가 교차하는 세겜에 단을 쌓았던 때는 근동 지역에서 부족의 이동이 활발하던 때로, 아무르[아모리]족에 의해 초기 청동기 시대의 도시 다수가 파괴된 후 재차 곳곳에 소규모 정착지가 형성되던 중기 청동기 시대였다. 우르 제3왕조의 멸망과 관계된 아무르족이 후리[호리]족과 혼재하던 당대에는 이렇다 할 대제국이 없었으며 따라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