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 왕국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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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이후 조선 사회를 지배했던 성리학적 명분론이란 '이름에 따른 분수'가 있기에 대국과 소국, 임금과 신하, 양반과 평민 간에는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는 논리였다. 여성에게 정절을 강조하는 추세 속에 재가한 사족 부녀의 자손은 관직에 기용치 않는다는 성종 8년(1477)의 과부 재가금지법이 제정되었으니, 남편을 먼저 보낸 여성을 지칭하는 미망인(未亡人)은 기실 순장이라는 악습과 관련된 슬픈 용어이다. 그 영향력이 끝없이 지속되기를 원했던 권력자들은 현세에서 부리던 존재들이란 사후에도 자신들의 봉양에 쓰여야 한다는 계급적 사고방식을 가졌고, 이에 문명의 성립 무렵부터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생명들이 야만적 장례 풍습의 희생양으로 사라져 갔다.
죽음을 앞둔 헤롯 대왕은 온 유다의 지도자들을 모아 가둔 뒤 유대인들이 에돔 출신 로마 앞잡이의 퇴장에 환호하지 못하도록, 대대적 애곡 중에 엄숙한 장례가 이루어지도록 자신이 죽는 순간 갇힌 이들을 몰살시키라 지시했다. 헤롯의 여동생이 미리 석방 조처를 행한 덕에 대학살은 면했지만, 이를 통해 여호와의 주권에 의해 아기 예수를 죽이려는 사악한 계략이 가로막힌 헤롯이 예레미야의 예언(렘 31:15)대로 베들레헴 인근 두 살 이하 사내아이들을 살육해 어머니들의 통곡을 부른 잔혹성의 배경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사망 직전 마지막으로 바뀐 유언에 등장하는 헤롯 가문의 2세대, 곧 10대의 세 아들들은 (3세대 및 4세대와 더불어) 모두 헤롯의 명칭을 사용하였기에 성경 독자의 혼란이 야기된다.
1. 헤롯 아켈라오(Herod Archelaus. 주전 4~주후 6년)
아버지의 임종에 가무로 즐거워하던 아켈라오는 유언상의 왕위계승자였다. 2007년 ‘건축광’ 헤롯의 요새 헤로디온에서 헤롯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의 발굴이 발표되었는데, 헤로디온까지의 화려한 장례 행렬을 이끌었던 이 또한 아켈라오였다. 학정의 완화를 약속한 직후 유월절 소요 때 삼천 여를 죽인 그는 왕위의 인준을 위해 로마로 떠났으나 경쟁자들 역시 로마로 향했고, 아우구스투스는 유언을 집행하며 아켈라오에게 유대 ·사마리아·이두매를 맡긴다. 호세아의 예언(호 11:1)대로 이집트로 피신했다 돌아온 요셉이 아켈라오를 두려워하여 베들레헴 아닌 나사렛에 정착함으로 이사야를 통한 언약(사 11:1)이 성취되었고, 이후 폭정으로 쫓겨난 아켈라오의 통치 지역을 총독 코포니우스(6~9)가 다스리게 된다.
2.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 주전 4~주후 39년)
아켈라오의 동복형제였던 안티파스는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으로 세워졌으며, 부왕의 간교함을 가장 많이 닮은 그를 예수께서는 ‘저 여우(눅 13:32)’라 언급하셨다. 자신의 후견인 티베리우스 황제(14~37)의 이름을 딴 갈릴리 서편의 도시 디베랴(Tiberias)를 조성했던 그는 이복동생 빌립 1세(막 6:17)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불륜을 비난한 세례 요한의 처형을 명했으며, 메시아의 이적을 볼거리 취급하고 업신여겨 희롱(눅 23:11)했던 자였다. 그의 처 헤로디아는 황제 칼리굴라(37~41)에 의해 왕으로 책봉된 오빠 아그립바 1세를 질투해 왕의 칭호를 얻도록 남편을 부추겼고, 아그립바의 역공으로 황제의 심기를 거스르게 된 부부는 갈리아로 유배당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3. 헤롯 빌립 2세(Herod Philip Ⅱ. 주전 4~주후 34년)
유언장 문제로 아우구스투스가 주재한 로마의 청문회장에 나타나 배다른 형 아켈라오를 지지하지 않고 자기 지분을 주장했던 빌립 2세(눅 3:1)는 갈릴리 동북부 이두래와 드라고닛을 하사받았다. 헤롯 가문의 인물 중 그나마 온건했던 그는 - 부친이 지중해 연안에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해 건설한 항구도시 가이사랴와 구별되는 - 만년설이 녹아 흘러 요단 강의 원천을 이루는 헤르몬 산 남쪽에 가이사랴 빌립보를 정비해 세운다. 이곳에서 파편(페트로스)일 뿐인 베드로가 원 반석(페트라)이신 예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라 고백하게 하신 하늘 아버지의 섭리는 원 포도나무의 은혜만으로 그 가지들이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교회의 아름다운 복음 사역으로 부단히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