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고난’이 아닌 이유 <나 없는 내 인생>

환자들이 시한부 선고를 받는 씬을 지켜보는 건 아무래도 귀찮고 감정적 소모가 심하다. 곧 다가올 죽음을 납득하지 못하는 그들은 대개 비슷한 광기와 분노와 억울함에 도취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다소 과잉된 반응으로 사납게 날뛴다 하더라도, 우리는 인륜적이고 도덕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그들의 패악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인간으로써의 도리’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관객들의 머릿속에 낙인처럼 자리해 있으므로. 그래서, 나는 그런 식으로 부당하게(?) 심기를 건드리는 영화들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또 하나, 대체적으로 시한부 영화의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별할 것도 없고 특별해서도 안 된다. 적당한 선과 룰이 있다. 시한부 환자의 심리상태가 일정한 순서를 따르는 것처럼.

  그러니까, 시한부 삶을 절제 있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자에게 ‘절제’란 사실 엄청난 허구이자 사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없는 내 인생>에서의 절제에는 그러한 위선이 느껴지지 않는다. 석 달 남짓한 시간을 선고받는 주인공의 태도는 담담해서 현실감이 없을 지경이고, 그녀는 시종일관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짜내고 자기연민에 빠지는 것으로 남은 시간을 대신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가족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비록 다른 남자일지언정.

  차 안에서, 혹은 마켓을 돌아다니면서 무심하게 슥슥 스치는 대사들이 마음을 긁는다. 죽음의 방법이 아닌 죽음 자체를 진지하게 고민해왔던 사람이라면, 그녀의 대사가 소름끼치게 와 닿을 것이다. 그것 이외의 슬픔은 상당 부분 자제되어 있고 축소되어 있다. 마치 <나 없는 내 인생>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오로지 당사자 그녀의 몫일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듯, 지켜보는 당신들은 어디까지나 제 삼자일 뿐이며 상관없는 사람이지 않겠냐는 듯 냉정하게 덤덤하게.

  영화의 제목 <나 없는 내 인생>이라는 제목은 가장 끔찍하며 고독한 비극을 함축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그 원초적인 비극을 훌륭히 소화하고 어른스럽게 감내한다. 그런 그녀의 가장 멋진 점은, 태도 면에서의 쿨함과 여유로움이 아니라, 자신의 남은 삶을 손 안의 깃털처럼 사랑스럽게 어여삐 여기는, 소녀 같은 미소이다.

  요즘 베드로서를 공부하면서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은 ‘고난 받으라’는 힘 있는 권고이다. 그것은 고난을 받지 않는 것을, 손실을 줄이고 피하는 것을 득이자 현명함으로 여기는 작금의 시대를 거스르는 말이다. 그럼에도 속을 긁긴 커녕 위로가 되다니, 모르는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릴 일이다.

  베드로는 왜 고난을 받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며 어찌하여 축복인가를 반듯하게 말해준다. 지난시간 김목사님의 설교처럼, 우리는 민간인과는 구별되어야 할 군사 즉, ‘하나님의 군사’이다. 군사에게는 차별화된, 고되고 가혹한 훈련과정이 주어진다. 또한 그들에게는 또렷한 목표와 사명, 은사가 있으며 훈련을 마친 후의 달콤한 보상이 따른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에게 고난은,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에 받는 특별한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훈장을 몸에 새기는 과정은 고통스러우나 이는 분명 기쁨과 감격을 수반한다.

  고난의 극단이자 절정이랄 수 있는 ‘죽음’이 행복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떠한 두려움 앞에서도 긍지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있는 것은 사랑받는 자, 선택받은 자의 절대적 특권이다. 우리는 생명이 무엇인지 알고, 피조세계 창조와 종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며 그리스도가 확증하는 것이 바로 여호와의 명증한 존재 단 하나임을 안다. 그 여호와를, 그의 뜻과 작정과 섭리의 의도와 목적을 알기 때문에 결코 두렵지 않으며, ‘두렵지 않은’의 범위를 벗어나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고난 받으라’가 왜 위로가 되는지, 죽음조차 왜 행복일 수 있는지. 우리는 지상에서 싸울, 많은 훌륭한 무기들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