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작성일 : 09-12-30 13:45 |
삭막한 ‘관계 맺기’의 모진 결말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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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존재인 인간은, 동시에 여러 가지의 역할을 하며 그에 따른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관계의 농도는 짙을수록 인간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농도가 묽은 일회적인 관계라 해서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일’ 때문에 마주치고 스치는 삭막한 관계의 누적으로 인해, 한 남자가 어디까지 망가지고 다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핸드폰>이 여기에 있다.
승민은 연예계의 밑바닥부터 맨몸으로 부딪혀 커 온 기획사 사장이다. 아내의 임신 소식까지 모를 정도로 치열하고 바쁘게 일만 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그가 또 스타를 키워냈다. 청순한 이미지로 대중의 시선을 자로 잡은 배우 J. 그러나 그녀와 잠시 사귀었던 무명 모델이 그녀와 찍은 동영상을 승민의 폰으로 보내 거액을 요구하며 협박해오는 사건이 터진다. 여배우에게 남자가 관련된 스캔들은 특히 치명적이다. 승민은 가까스로 동영상 파일의 원본을 돌려받고, 그 무명 모델을 손봐준다. 자신의 뜻대로 돈도 아끼고 동영상 유출도 막은 것이다. 승리감에 도취된 것도 잠시. 그는 핸드폰을 잃어버린다. 인맥으로 굴러가는 그 바닥에서 핸드폰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꽤 아찔한 일이다. 잃어버린 핸드폰을 정지시키고 그 번호를 새 폰에 적용해 쓰면 되겠구나- 하는 훌륭한 대안도 잠시. 그는 J양의 동영상 파일이 핸드폰에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그 때 선뜩하고 차분한 목소리의 한 남자로부터 전화가 온다.
승민의 핸드폰을 주운 남자는 정이규. 그는 대형마트에서 고객관리 업무를 주로 맡고 있는, 인상 좋고 친절한 베스트 직원이다. 그러나 하루 종일 그가 감당해내야 하는 고객들의 요구와 불평은 끊이지 않는다. 제품을 사용해서 망가뜨려놓고 처음부터 하자가 있었다며 환불해달라는 고객, 주기적으로 전화가 와서 욕을 퍼붓고 사과를 요구하는 고객, 직원을 성희롱해놓고 제가 더 화를 내며 물건을 때려 부수는 고객, 마트 안에서 잃어버린 애완견을 찾겠다고 온 마데를 다 헤집고 소란을 피우는 고객. 하지만 그는 배테랑답게 고객들 앞에서 모든 것을 감내하며 웃고, 사과하고, 또 받아들인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혀 내는 소음, 감정의 상호 교환이 아닌 일방적인 방출,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혐오, 병상에 누워 계신 어머니의 수술의 실패와 경제난. 그는 이 모든 상황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홀로 감당하고 버텨내야했다. 내부에서 억눌려있던 그의 뒤틀린 자아는 우연한 기회로 주운 승민의 휴대폰을 먹이삼아 괴물이 되어간다. 그는 승민에게 말도 안 되는 잔인한 일들을 명령하고, 이행의 증거로 도착하는 포토메일에 흡족해한다.
영화 자체는 탄력이 있고 속도가 빨라 흥미로웠다. 중후반까지는 어떤 식으로 매듭지어질까가 궁금해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결말은 매우 ‘쉬웠’다. 일을 다 벌여놓고 죽이면 그만인가? 참으로 편리한 해법이다. 더군다나 이규는, 표면적으로는 악당이지만 소비지향과 물질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 사회가 생산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닌가. 그런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감정적 폭발의 장을 마련해줘 놓고는 그 대가로 목숨을 거둬가 버렸다. 너무 벙찌고 무책임한 끝이다.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그에게 주어질, 좀 더 타당한 형벌을 기대했던 내겐 참으로 씁쓸한 뒷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영화 장르가 스릴러임을 감안할 땐 괜찮은 마무리였지만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훌륭한 완충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인간은, 모두들 승민과 이규처럼 귀퉁이만 건드려도 부서지는 약한 존재들이 아닌가.
본인이 아무리 견고하게 벽을 쌓는다 해도 그 벽을 무너뜨릴 힘을 가진 또 다른 인간이 나타난다면 결과는 뻔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처럼 강력한 펀치를 가진 인간이 나타나도 그 충격을 흡수한 후 내게 전달하기 때문에 나는 당장은 욱신하나 그 아픔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다.
아무리 영화 속 인물이라지만 이규가 너무 안타깝다. 세상과 사람에 짓눌려 신음하는 그가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일어나지 못하는 그 모습이 끝은 아닐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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