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병든 제자와의 이별이 주는 교훈
伯牛有疾 子問之 自牖執其手曰亡之 命矣夫 斯人也 而有斯疾也 斯人也 而有斯疾也
백우유질 자문지 자유집기수왈망지 명의부 사인야 이유사질야 사인야 이유사질야
논어 옹야 장의 계속이다.
“백우가 병에 걸리자 공자가 병문안을 했다. 남쪽 창문으로부터 그의 손을 잡고서 말했다. ‘(이건) 아니다. 천(운)명인가.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백우는 공자의 제자로 성은 염(冉)이고 이름은 경(耕)이다. 백우의 병은 많은 선배 유학자들에게는 문둥병(癩, 나)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牖)는 남쪽으로 난 창문이다. 『예기』(禮記)에 따르면 병든 사람은 북쪽 창문 아래에 있고, 임금이 그를 보러 올 때 남쪽 창문 아래로 가게 해서 임금이 남쪽을 향하고 자신(병자)을 보도록 하는 것이 예이다. 백우의 가족이 이러한 예를 따라 공자를 대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공자는 자신을 임금처럼 대하는 그들의 대접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남쪽 창문으로부터 그의 손을 잡았던 것이다. 이것이 백우와의 영영 이별(永訣, 영결)이었다.
공자가 백우의 손을 만져보고 “이럴 리가 없는데”(‘亡之’는 ‘無之’(무지)와 같은 뜻이다)라고 한 것은 백우와 같은 인품을 지닌 사람이 병에 걸려서는 안 된다는 탄식이었다. 그는 두 번이나 “이 사람이 이 병에 걸리다니”라고 한탄하였다. 이 말은 백우의 평소의 삶을 볼 때 그가 이런 병에 걸릴 만큼 함부로 살지 않았고 평소의 생활이 매우 견실했었음을 증명해 준다. 실제로 백우는 안자(顏子)와 민자(閔子) 다음가는 덕행(德行)의 뛰어난 실천자였다(논어, 선진).
본문은 공자가 병에 걸린 제자와의 이별을 기록한 글이다. 논어에서는 이외에 안회의 죽음에 대한 기술이 있다. 그런데 공자 시대의 원시 유학은 죽음에 대하여 후대의 성리학의 이기론과 같은 기의 논리가 없었다. 원시유학에서는 성리학(신유학이라고도 한다)에서 말하는 만물의 생은 기의 모임이고 만물의 죽음은 기의 흩어짐이라는 의식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이 당시는 오히려 은(殷)나라(또는 商나라라고도 한다)의 사상에 상당히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은나라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하늘의 별이나 신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은나라 사람들은 돌아가신 부모의 복을 받기 위해 부모에게 효도하였다. 하지만 문왕의 아들 주공이 은나라를 정복하고 주나라를 세우고는 조상신 숭배사상 대신에 천명사상을 확립하였다. 이 사상의 핵심은 사람이 스스로 덕을 세워 선을 행하는 자에게 하늘이 복을 준다는 것이었다. 주나라에서 왕을 천자라고 한 것도 천명사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공자는 제자와 마지막 손을 잡고 그가 이런 병에 걸려서는 안 되는 훌륭한 덕을 지닌 자라는 말 이외에 더 이상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슬픔을 간직한 채 제자를 죽음에 내맡겨야 했다. 공자 자신이 말했듯이 그 자신이 생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는가.(“未知生焉知死”, 미지생언지사, 『논어』, 「선진」) 이것이 공자의 한계이자 유학의 한계였다.
공자의 사생관은 이것이 전부다. 누구든지 살아 있는 동안 스스로 덕을 훈련하고 실천하면 하늘의 복을 받는다는 것이 전부였다. 죽음에 대해서는 열심히 살았지만 애석하다거나 슬픔을 표현하는 정도로 끝나고 만다. 그 이상은 어떠한 논의도 이어질 수 없고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질병도 죽음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인은 질병이나 죽음이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과 해답은 무수히 많을 수 있다. 그리고 어떤 해석이나 해답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라면 다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빼놓아서는 안 되는 유일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리고 그의 삶과 죽음과 다시 살아나심이다. 즉, 우리의 일체의 고난들, 질병, 죽음 등에 대한 어떠한 이해나 해답이든 반드시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다시 살아나심과의 관계 안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죽었으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나셨다. 그분의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은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그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고 죽음과 부활은 인류의 구원과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드러낸 것이었다.
대한의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 역시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죽도록 하자. 우리의 제자들에게 생도 모르고 죽음도 모른다고 하지 말자. 우리 스스로에게 그리고 후배나 제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와 함께 살다가 그와 함께 죽을 것이고, 다시 살아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살 것이라고 공언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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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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