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1-08-09 21:0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신’이 된 철학자: 엠페도클레스


오, 그대 비참한, 실로 불행한 필멸자의 족속이여, 그 무슨 불화에서, 그 무슨 비탄에서 그대들은 생겨났는가!

인간의 필연적 멸망에 대한 운명을 개탄스러워하는 위의 인용은 주전 5세기 말 한 철학자의 레토릭이다. 구약 성경 ‘에스더’ 시대(주전 486~465년경)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섬으로 남서부에 위치한 시칠리아섬 서부에 위치한 아그리겐툼에는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주전 490년경~430년경)라는 철학자가 활동하고 있었다. 막대한 재력을 가지고 말 사육으로 유명한 가문 출신이었다. 조부와 숙부는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자가 되기도 했다. 엠페도클레스는 철학자이기도 했지만 젊은 시절 참주정치를 반대하며 정치에도 깊이 관여했으며 시인으로 정치 연설가로 종교교사로 하물며 생리학에 대한 지식도 뛰어난 당대의 위인(偉人)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가 ‘최초의 수사학 발명자’(391)라고 칭했으며 또한 생리학과 관련해 엠페도클레스는 이탈리아 의학의 초석을 마련한 자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호메로스의 시작(詩作) 유형과 같은 육운각(六韻脚, 헥사메트로스) 방식의 400행 시집 ‘자연에 관하여(Peri physeōs)’도 유명하다. 세간에 더 유명해진 일화는 스스로 신이라 칭하며 에트나 화산 분화구에 몸을 던진 전설에 담겨있다.

그는 왕이 입는 자주색 의상에 금띠를 매고 청동 구두에 델포이 사제의 관을 쓰고 다녔으며 항상 음울했다. 그리고 인간은 삶의 고통에서 구원받아야만 하는 유한한 필멸(必滅)의 운명임을 슬프게 노래했다. “오랫동안 잔혹한 고난으로 고통당한 끝에 수만 명씩 무리 지어 구원의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탐색하며 나를 따라다닌다.”(386) 그리고 그는 구원의 실마리를 모든 생명의 동질성과 단일성에서 찾았다. 그래서 육식을 철저히 반대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동족 살인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용한 엠페토클레스의 말이다. “엠페도클레스는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살생은 어떤 경우에는 옳고 어떤 경우에는 옳지 않은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법률로서, 광활한 에테르와 측량할 수 없는 광휘의 하늘을 가로질러 펼쳐져 있다.”(387) 모든 사물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어떤 피조물도 살해할 수 없다. 자연과의 공생은 인간 구원의 필연적 조건이 된다. 범신론적 사유를 인간 해방의 실마리로 삼고 있는 엠페도클레스에게 자연에 대한 동정심은 증오와 고통을 사랑으로 극복하기 위한 요건이 된다.

공생과 공존의 확신은 그가 막연한 이론가가 아닌 몸소 실천한 행동가로서 종교적으로 추앙받는 인물로 만들기도 했다. 그는 사유 재산을 폐지하는 개혁을 단행했으며 이로써 사람들로부터 큰 명성을 얻어 (받지는 않았지만) 국가 하나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나아가 자비(自費)를 들여 강줄기를 연결하는 토목 공사를 통해 흑사병을 퇴치하기도 했다. 이에 사람들은 그를 신처럼 숭배했으며 그의 형상을 새긴 동전을 만들기도 했다.(391) 이러한 배경으로 볼 때 그의 말은 ‘신의 지위’에 있었다. 하지만 사상의 바탕은 언제나 염세주의가 지배하고 있었으며 당대의 지배적 종교 세력가들과는 불화를 야기했다. 그래서 자신을 ‘추방된 신’(394)으로 느꼈다. 세상에서 신이 추방당한다는 사실은 그에게는 필연적이다. 갈등과 대립, 모순과 투쟁은 이 세상이 존립하는 필연적 조건이다. 유한성을 가진 필멸의 인간은 불화와 조화, 미와 추, 부지런함과 게으름, 확신과 불확신, 성장과 몰락 사이에서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395) 그렇기 때문에 엠페도클레스는 함부로 ‘전체’를 파악했다고 말하는 것은 제정신이 아닐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경고한다. 대립과 갈등이 야기하는 고통과 불화의 실존을 극복하는 것이 그에게는 구원이며 해방이다.

그는 불화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철저하게 자연철학자의 전통을 따른다. 이른바 그가 말하는 참된 실재 네 가지 곧 흙, 불, 물, 공기는 신화적 요소들을 극복하고 인간의 유한한 삶을 그대로 인정하고 인간의 능력으로 그 불화의 삶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단서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서로 다른 자연적 요소들이지만 결합의 여지는 항상 열려 있다고 강조한다. 농도의 차이이며 상황에 적응하는 정도가 다를 뿐이며 그 근본에는 동류(同類) 의식이 항상 지배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언제나 상호 교류와 연합과 통합의 힘이 작동하는데 엠페도클레스는 이를 ‘사랑(philia)’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철학적 특징이 드러난다. 철저하게 유물론의 운동 원리에 바탕을 두면서 인간의 내면적이고 정신적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때로는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해명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신과 인간의 경계를 오가며 인간의 필멸성을 극복하고자 시도했다는 데 그의 주요한 특징이 있다. 그래서 니체는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의사와 마술사, 시인과 수사가, 신과 인간, 학문적 인간과 예술가, 정치가와 사제, 피타고라스와 데모크리토스 사이에서 떠돕니다.”(403)

우리는 이쯤에서 인간을 신으로 추앙하는 어리석은 지중해 철학과 문화의 우매함에 대해 창조주와 심판주를 깨닫게 했던 바울 사도의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유물론과 허구적 종교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한 철저한 해체와 명확한 대안은 성경의 절대진리로 돌아가야만 완결된다는 당위성을 다시 새겨본다.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행 14:11-15)

<213호에서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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