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2-01-12 10:4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살아감은 올곧아야 하나니


子曰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
자왈인지생야직  망지생야행이면

『논어』 「옹야장」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이렇다.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곧아야 한다. 곧지 않고 사는 것은 요행으로 (화를) 면할 뿐이다.”

본문에서 ‘생(生)’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본문을 이해하는 관건이다. 생은 문자적으로는 ‘생명’이나 ‘태어남’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살아감’이나 ‘생활’로 해석될 수도 있다. 본문의 경우에는 후반의 내용과 연관지어 볼 때 생은 ‘태어남’보다는 ‘살아감’이나 ‘생활’ 등으로 해석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공자는 사람의 살아감이 곧아야 한다고 보았다. 후대의 학자인 정자(程子, 1033~1107)는 이에 대한 보충설명을 하면서 ‘생의 이치는 본래적으로 곧음이다(生理本直, 생이본직)’라고 하여 ‘이(理)’ 첨가하였다. 공자는 살아감이라고 본 것에 비하여 정자는 살아감의 이치로 확장하여 규범처럼 이해하려 한 것이다. ‘망(罔)’은 ‘곧지 않음(不直)’이니 ‘망지생’은 ‘곧지 않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곧게 살지 못하는 데도 그의 생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공자나 옛 성현들은 요행으로 살아가는 삶에 지나지 않으며 겨우 천벌을 면하는 정도로 이해한 것이다(幸而免爾, 행이면이).

정자(程子)의 때만 하더라도 유학에서 아직 리와 기의 이론은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유학에서 태극을 리라고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장재(張載, 1020~1077)였다. 정자는 ‘천이 리(天則理)’라고 하였다. 우주가 리와 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유학의 세계관은 주자(주자, 1130~1200)에 이르러서 완성될 수 있었다. 오직 공자는 모든 사람이 살아갈 때는 곧음을 근본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만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에 비해 정자의 대에 이르러서는 사람의 살아감이 ‘생리(生理)’, 즉 살아감의 원칙이나 규범 정도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공자는 그의 아버지 숙량흘과 어머니 안징재가 정상적인 결혼을 한 부부의 연에서 태어난 자식이 아니었다. 아버지 숙량흘은 본처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자 아들을 얻고자 당시 18세의 나이였던 안징재를 첩으로 맞이한 것이었다. 공자는 그렇게 해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노인이었던 숙량흘은 공자를 얻은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공자는 외갓집의 도움으로 교육을 받고 성장하면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이 때문에 공자는 말하자면 공부면 공부, 어떤 재능이면 재능 등 상황에 따라 닥치는 대로 익혀간 것으로 보인다. 천하를 주류하면서 힘든 생을 이어가야 하기도 했다. 공자가 이 역경을 이기고 자신의 학문의 성취를 이루었다고 느꼈을 때 자신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그 자신의 살아감이 올곧았기 때문에 이 일이 가능하다고 느꼈을 것으로 추측된다. 권문세가들의 몰락, 온 나라 사이의 갈등과 격랑의 흐름 속에서 오직 곧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올곧지 못한 삶을 사는 자들은 천벌을 받거나 요행히 그것을 면하더라도 소인배로서 살아갈 뿐이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올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올바른 삶이란 공자가 말하는 삶과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타락 이후의 사람의 몸과 영혼이 모두 부패했다고 선언한다. 소위 이성이나 오성 또는 의지가 모두 타락하고 부패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성으로는 결코 스스로 선을 행할 수가 없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부패한 인간은 스스로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당연히 타락한 본성으로는 선을 행할 수 없고 올바로 살 수 없다.
사람이 바르게 살 수 있는 길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비의 은총을 알고 그리스도의 대속해 주심과 의롭다고 해 주신 것을 믿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게 된다. 사람은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올바른 삶이란 자신의 본성을 계발하고 그것을 발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된다. 그 요약은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대한의 성도들이여! 말씀을 읽으며 좇아가자. 올곧은 삶에 대한 판단은 오히려 하나님께 맡겨두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현실 속에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자. 오늘도 내일도 그리하자.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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