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지(앎)과 인(어짊)의 조화
樊遲問知 子曰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번지문지 자왈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
問仁 曰仁者先難而後獲 可謂仁矣.
문인 왈인자선난이후획 가위인의.
논어, 옹야장의 계속이다.
“번지가 앎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답했다. ‘사람(백성)의 뜻을 힘써 행하고, 귀신을 공경하되 (그것을) 멀리하면 앎(지식)이라 할 수 있다.’ 번지가 어짊(사랑)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나중에 하면 어짊이라 할 수 있다.’”
번지는 공자의 제자로 이름은 수(須)다(논어 위정). ‘민(民)’은 보통은 백성인데 여기에서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民亦人也, 민역인야). ‘의(義)’는 사람의 도리의 마땅한 것에만 힘쓰는 것을 말한다(專用力於人道之所宜, 전용역어인도지소의).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는 것은 귀신의 (속성이라 할 수 있는) ‘알 수 없음’(존재)이라는 점에 미혹되지 않는 것이다(不惑於鬼神之不可知, 불혹어귀신지불가지). 어려운 일을 먼저하고 얻는 것을 나중에 하는 것은 어진 마음이 있어서다. 사람은 배워서 지식만을 많이 쌓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도리가 되는 일들을 하면서 사랑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랑을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공자가 번지에게 이 말을 한 것은 아마도 번지가 이 부분에서 무언가 모자랐거나 실수를 한 부분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번지의 ‘지(知)’에 대한 물음이 공자의 앎의 세계를 두 부분으로 드러나게 하였다. 하나는 지(식)이란 사람의 바른 도리를 힘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는 것이다. 이미 공자는 배움을 정의하면서 ‘학이시습(學而時習)’, 그러니까 ‘배우고 때로 익히는 것’이라 한 바가 있다. ‘익힌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여 익숙하고 능숙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배우는 것을 익혀서 그것만을 잘하는 것으로 그치게 되면 한쪽만을 알게 되어 덕 있는 사람이 되기 어렵다.
이외에도 지식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공경해야 할 부분과 멀리해야 할 부분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모든 배움은 그 첫 단계에서는 전혀 모르는 미지의 것이자 신비한 것으로 느껴지는 데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너무 막막해서 귀신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배움이 완성의 단계로 올라갈 때도 알 수 없는 신비한 영역들이 생겨날 수 있다. 유혹되기 쉬운 배움의 매력 가운데 하나다. 이 영역을 극복하고 배움의 고상한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이 영역 자체를 인정하고 공경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신비의 영역(귀신)에 대한 숭배로 인해 거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매이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래서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의 논리에만 매몰되어 그것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사람의 도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공자는 지식을 형성해 감에 있어 사람의 도리를 힘쓸 것과 신비한 것은 인정하고 공경하되 결코 거기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번지의 인에 대한 물음과 관련해서 공자는 배우는 사람이 세상을 위해 어렵고 힘든 일들을 먼저 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들은 나중으로 미루어야 함을 강조한다. 남에게 어려운 짐을 지우는 사람은 어진 사람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상을 정리하면 공자의 배움은 사람의 도리(이것은 하늘의 도리이기도 하다)에 힘쓸 것과 신비한 영역에 대한 인정과 동시에 거기로부터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자신의 이익은 맨 나중으로 하는 다른 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 갖추어 감을 핵심으로 한다.
이러한 공자의 지와 인의 조화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이 성경의 배움이든 세상에서의 배움이든 자신이 그 배움대로 익히 실행할 수 있도록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지식 따로 실천 따로이어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어하는 일들을 먼저 하고 자기에게만 이익이 되는 일들은 뒤로 미루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지식이나 배움에도 공경할 영역이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공경할 수 있는 부분과 다른 이를 공경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각자의 전공(은사) 영역에서의 고상한 성취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단연코 그 영역에 빠져서 그것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로서 배움을 시작하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에게서 온유와 겸손을 배우자. 그 짐은 가볍고 쉽다. 배우는 중에 점점 확신한 일에 거하자. 확신과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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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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