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3-08-22 10:4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공자의 음악 세계


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曰不圖爲樂之至於斯也
자재제운소  삼월부지육미 왈부도위악지지어사야.


『논어』, 「술이」편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제나라에 있을 때 ‘소(제나라의 음악)’를 듣고는 삼 개월 동안 고기 맛을 알지 않았다(고기를 먹지 않았다), ‘(순임금의) 음악의 지극함이 이 정도였는지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기(史記)』에는 ‘삼월(三月)’ 앞에 ‘학지(學之)’」라는 두 자가 있다. 그렇게 되면 삼 개월 동안 소(韶, 순임금의 음악)를 배웠다는 뜻이 된다. ‘부지육미(不知肉味)’는 마음을 그것 하나에 두고서 다른 곳으로 미치게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蓋心一於是而不及乎他也, 개심일어시이불급호타야). 음악이 이렇게 지극함에 이른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순(임금)의 음악의 지극함이 그렇게도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不意舜之作樂至於如此之美, 불의순지작악지어여차지미). 순임금의 음악은 그렇게도 깊은 감탄을 이끌어 내는 것이건만 공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에 스스로 탄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범씨는 소(순의 음악)가 아름다움을 다하고 선함을 다해서 음악으로서 이것에 비할 것이 있지 않은 것으로 이해하였다(韶盡美又盡善,樂之無以加此也, 소진미우신선, 악지무이가차야). 그는 ‘부지육미’가 공자의 탄미의 말로서 진정으로 소의 지극함을 알았고 그 깊음을 공감한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誠之至,感之深也。성지지, 감지심야).
잘 알려진 대로 공자는 주나라의 문물을 존숭하였다(『논어』, 「팔일」, “吾從周”, “나는 주의 문물을 따를 것이다”). 이 주나라의 선조가 요임금과 순임금이다. 요는 순의 덕성을 알고서 그에게 나라를 순양하였고, 순은 악한 부모를 섬기기를 다한 효의 표본이었다. 두 인물은 덕을 통한 통치라는 유학의 기본 질서를 세웠던 인물이다. 이들이야말로 덕화(德化)와 교화(敎化)를 실천한 유학의 선구자들이었던 셈이다.
음악은 12율로 이루어져서 한 번은 음하고 한 번은 양으로 변하면서 우주 질서의 변화와 조화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이해된다. 비록 오늘날 소의 음악성을 알 길은 없지만 적어도 공자의 표현에 따르면 소는 당시의 사회질서와 조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하나의 운율로 통합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진 문화양식이었던 것이다. 공자는 소가 사람과 사회에 대하여 지니는 의미를 이해했던 것이며, 진정으로 그 가치를 발견했을 때 그는 소를 더욱 체득하고자 삼 개월을 식음을 폐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공자의 삶의 자세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 하나는 진리를 알기 위해 자신의 즐거움이나 안락함을 자제하고 포기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인이 어떤 일이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자제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반드시 삼가야 한다. 하지만 참진리를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서 자신의 사적인 안락함이나 즐거움을 삼가는 것은 너무도 마땅한 일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인내와 고요함으로 자신의 사적 만족을 억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덕목이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무엇이 하늘나라의 참가치와 천국시민의 참가치인지를 늘 묵상하고 배우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사적인 욕망이나 감정에 사로잡혀서 하늘나라와 신자 모두에게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이라 하기 어렵다. 언제나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 자신과 주변의 소수의 그리스도인들, 나아가 자신이 속한 사회와 국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늘나라에까지 통용될 수 있는 참가치의 진리를 그리스도인은 찾아 나서야 한다. 이러한 배움은 끝이 없다. 그만큼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찾아 나서는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말씀대로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자들이다(행 1:8). 이것은 지리적으로 복음 전파의 극대화된 표현이다. 그렇다면 사적인 안락함과 즐거움을 자제하면서 하늘나라에까지 통용되는 참 가치의 궁극적 추구는 마음 내지 정신의 측면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른 이들의 마음속 끝까지 미치는 복음 증언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잠시 사는 세상에서 자신만을 위한 쾌락과 안락을 좇아가고 누리는 대신에 진정한 하늘나라의 고결한 가치와 그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가운데 고요하고 인내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자.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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