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9-05-29 19:5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루터 종교개혁이 몰아간 충격: 마녀재판


종교 개혁은 처음에는 다만 하느님과 인간의 실제적 관계의 변화였다. 물론 연옥의 불, 미사, 성자들의 힘과 같은 몇몇 조목들이 일소되기는 했다. 그러나 교리는 본질적으로 4세기에서 6세기에 이르는 옛 교회의 신앙과 일치하는 것으로 남아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옛 하늘, 옛 땅, 옛 지옥을 고수했다. 악마의 신화는 크게 과장되었다. 이 점에서 루터는 자기 시대의 아들일 따름이다. 마녀 심판은 이 세계관의 서글픈 폐해이다.

마이센의 영지에서는 1640~1651년 천 명에 이르는 마녀들이 희생되었으며, 밤베르크에서는 그 수가 2년 동안 300명에 육박했다. 시칠리아에서는 150년간 3만 명에 이르렀다. 이것은 몇몇 예들일 뿐이다. 1783년에는 글라투스에서 마술을 핑계로 한 마지막 사형이 집행되었다. 토마시우스Thomasius는 재판정에서 마녀를 쫓아냈다. 1703년의 일이다. 1750년이 되어서야 마녀 신앙이 모멸의 대상이 되었다.(Friedrich Nietzsche, 『유고(1864년 가을~1868년 봄)』 니체전집1(KGW I4,II2,II4), 김기선 옮김, 서울: 책세상, 2003, 547쪽))

인용은 루터교 목사의 아들 청년 니체가 21살에 내린 루터에 의해 시작한 독일 종교개혁에 대한 정의다. 니체는 종교개혁의 사상적 의의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변화라고 본다. 니체가 볼 때 중세 로마 가톨릭의 가장 큰 폐해는 우선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본 것이 첫 번째 심각한 착각이었으며, 두 번째 더 심각한 착각은 로마 교황청이 지구의 중심이라는 주장의 날조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하늘과 세상을 로마 교황청이 다리를 놓아줘야만 하며 그래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한 마법사의 농간을 부린 것이다. 이에 대해 인용에서 보면 니체는 종교개혁을 통해 연옥이나 미사나 성자들에 대한 우상적 요소가 일소되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종교개혁도 초기 로마 가톨릭을 여전히 따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에서 니체는 중세 로마 가톨릭이 과거에 저지른 신도들에 대한 억압과 폭정을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들도 재현했다는 점을 비판하고자 한다.

니체는 루터를 자기 시대의 아들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중세 로마 가톨릭의 연장선에 있으며 중세 천 년이 지배했던 자기 시대에서 활동한 한계가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어느 인간인들 자기 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마는, 서유럽에 끼친 종교개혁의 폐해는 그 폐해의 심각성이 크다는 진단이다. 다른 의미 체계로 해석하지 않으면 니체의 루터 평가는 정당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니체는 종교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서유럽에서 잔인무도한 사건으로 ‘마녀 심판’을 거론하면서 시대가 낳은 세계관의 서글픈 폐해라고 지적한다. 독일 마이센에서 1640~1651년 천 명의 마녀 재판이, 밤베르크에서는 2년 동안 300명, 그리고 이탈리아 남부 섬 시칠리아에서는 150년간 3만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니체의 말대로 몇몇 예들일 뿐이다. 1517년 종교개혁 250년 후 화형대에서 불에 태워 죽이는 일은 멈추었으나 세간에서는 마녀 신앙은 여전히 모멸의 대상이 되었다. 니체에게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또 다른 중세 로마 가톨릭의 재현이었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종교적 권력을 잡으려는 자들의 잔인무도함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또는 그동안 종교적으로 억압당했던 것을 되갚으려는 원한감정과 복수심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화형대에 묶어 태우는 일의 배경에는 사단의 유혹을 받아 인류를 불행하게 했던 시조 하와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사악한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다. 불에 태워 죽이는 이유는 가히 기가 막힌다. 성경에 보면 사람의 피를 흘리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 그 이유이며, 모두 태워야 그 속에 들어있는 악귀(惡鬼)도 모두 죽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미디와 같은 이러한 억측에 결코 웃을 수 없다. 이러한 억측 때문에 지금도 특정 종교 단체에서는 여성을 억압하고 학대하는 것이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딸에 대한 살해까지 정당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쨌든 니체가 보기에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서유럽에 몰아닥친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살육은 중세 로마 가톨릭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니체가 읽고 보고 듣고 이해한 자기 고향 독일 중북부와 나아가 서유럽 연안 국가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그 참상은 니체로 하여금 성경진리의 심오함으로 들어오는 길을 점점 차단해 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니체가 가지고 있던 성경관과 신관이 무엇인지도 관심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부분은 다른 문헌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거나 종교적 진리의 순수성을 앞세워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저지르는 만행 앞에서 니체 아니 어떤 인간도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로마군에 넘겨서 잔인무도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여 가는 것을 지켜보는 유대인 종교지도자들과 그를 따르는 유대인들처럼, 니체에게 보이는 당대의 종교개혁 이후의 유럽 기독교도들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종교인들을 잔인하게 살상하는 유대인의 역사적 전철을 밟고 있었다. 유대인 군중들은 떡과 물고기의 축제 자리 그리고 불치의 병 나음의 현장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송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들지 않자 종교 권력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 니체가 볼 때 이러한 행태가 그때나 당대나 나아가 앞으로 반복될 것이라는 사실에 절망했다고 볼 수 있다.
니체는 이러한 잔인한 개신교 역사 속에서 눈에 볼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차원인 기독교 신앙의 고귀한 본질을 감히 볼 수 없었다고 판단된다. 종교개혁의 슬로건 중의 하나인 ‘오직 믿음으로’의 절대주권적 주관자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믿어질 수 없었으며 아래와 같은 믿음의 숭고함 역시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관리하시며 보호하신다는 사실이 믿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 11:33~40).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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