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하늘에 죄를 얻으면 기도해 봐야 소용없다
祭如在 祭神如神在 子曰 吾不與祭 如不祭
제여재 제신여신재 자왈 오불여제 여불제
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何謂也
왕손가문왈 여기미어오 영미어조 하위야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자왈 불연, 획죄어천 무소도야.
논어 「팔일」 장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제사를 지낼 때는 (부모님이) 계시는 듯이 하였고 신을 제사할 때는 신이 계신 듯이 하였다. 공자가 말했다. “내가 제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한 것이 아니다.”
왕손가가 물었다. “아랫목 신에게 잘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부엌 신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기도(아부)하는 것이 소용이 없다.”
제사는 은나라 시대부터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은나라 사람들은 조상들 특히 부모가 돌아가시면 하늘로 올라가 신처럼 되어 자손을 돌보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부모를 섬기는 제사가 많았다. 물론 은나라에는 조상신 외에도 다양한 신들이나 제사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나라의 제사를 할 때에 왕이나 제후들이 국사를 핑계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제사에 참여하더라도 일부 제후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손한 자세로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당시에 이처럼 예에 어긋나는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공자는 그 자신이 제사에는 반드시 직접 참여하며 제사하는 동안에는 그의 조상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여기면서 제사한다는 주장을 통해서 당시의 세태를 비난한 것이다.
왕손가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제사에 익숙한 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왕손가는 여러 귀신들 중에서 어느 신에게 제사하는 것이 실용적일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자였다. 그는 방안의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는 신(the god of the dark corner)에게 제사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 아니면 부뚜막 신(the kitchen god)에게 제사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를 따졌다. 즉 그는 제사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어느 신에게 제사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지를 계산하는 자였던 것이다.
공자의 대답은 왕손가에게는 통렬한 것이었다. 누가 제사하든지 하늘에 죄를 얻은 자는 제사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하늘은 사람과 만물을 주재하는 존재다. 하늘은 초라한 재물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태를 적나라하게 알고 있다. 사람은 하늘에 대하여는 바르고 공정하게 생활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늘에 잘못을 저지르며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선한 그리스도인이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값싼 은혜에 근거하여 자신을 미리 구원은 받은 자로 여기고 의롭게 살지 않으려 해서는 안 된다. 예정론에 근거하여 자신은 구원받았고 그래서 어떤 죄를 범하더라도 다 용서될 수 있다는 은혜 남용주의 자세를 경계해야 한다. 헌금이나 봉사, 입으로 하는 섬김, 믿음이 없는 기도 등의 형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면 자신의 죄가 용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없애야 한다. 공자조차도 하늘에 죄를 지어서는 인간이 어떠한 제사를 지내고 그 제사를 통해 어떻게 기도하더라도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하늘에 죄를 범하려 하지 않았다. 하물며 그리스도인이랴.
하나님께 범한 죄는 어떠한 것이라도 그 값이 치러져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던 이유다. 성령을 거스른 죄 이외에는 모두 용서될 수 있는 죄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진정 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쉽사리 죄를 범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쉽사리 죄를 범한다면 그만큼 그리스도를 죽게 하는 자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 몸으로 마음으로 죄를 범하기를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기를 소원한다. 값싼 은혜 대신에 감사의 마음으로 의롭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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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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