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즐거움과 슬픔의 교향곡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자왈 관저 낙이불음 애이불상
『논어』 「팔일」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이렇다.
공자가 말했다. “시경의 관저편(『詩經』 <關雎篇>)은 즐거우면서도 바름을 잃지 않고 슬프면서도 (조)화를 잃지 않는다.”
관저편은 “관관저구 재하지주 요조숙녀 군자호구”(關關雎鳩 在河之州 窈窕淑女 君子好逑, 관관(암수가 꾸륵 꾸륵) 저구(물수리새)가 물가(황하)에 있네.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네)로 시작하는 시경의 첫 시의 편명이다. 본문의 군자는 문왕(文王)을 가리키고 요조숙녀는 문왕의 비 태사를 가리킨다.
음(淫)은 즐거워함이 지나쳐서 그 바름을 잃은 것을 뜻한다(淫者之過而失其正者). 상(傷)은 애통함이 지나쳐서 (조)화에 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哀者之過而害於化者). 그러니까 관저편은 물수리 새들 암수가 물가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서 이를 사람에게 빗대어 문왕과 태사의 사랑이 인간의 본성에 맞는 아름다운 것으로 비유한 시라 할 수 있다.
시경의 국풍(國風)은 주나라에 떠돌아다니던 여러 편의 민요들을 공자가 엮어 만든 시집이다. 이미 공자는 주나라의 문명이 빛나기에 자신은 주나라의 문화를 따를 것이라고 선언하였다.(“吾從周” 논어 팔일) 공자가 오매불망 꿈속에서라도 보고자 했던 이도 문왕이다. 그래서 시경의 첫머리에 문왕과 관련된 민요를 게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분명히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짝을 찾는 모습을 노래한 것이다. 주자는 모시전에 기록된 내용을 인용해서 두 사람의 사랑을 인간의 본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사랑의 행위로 해석하였다.
관저시가 보여주듯 모든 인생은 사랑을 하듯이 즐겁게 살아야 한다. 즐겁게 사는 것은 인생이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삶의 정리다. 비단 남녀가 서로 만나기 위해 사랑을 찾는 순간만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통해 즐겁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즐기는 것은 문제를 발생시킨다. 무엇보다도 지나친 즐거움은 즐거움의 기본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한다. 동시에 사람은 슬퍼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나 타인에게 무엇이 슬픈 것인지를 모른다면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이별의 슬픔, 죽음의 슬픔, 실패의 슬픔 등등은 인생의 의미를 한층 깊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깊은 슬픔에 빠져서 자신이 가야 할 전 인생길의 조화로움을 해치게까지 된다면 그것은 참 슬픔일 수가 없다.
인생을 단 두 종류의 삶으로 정리한다면 분명히 즐거움과 슬픔의 조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즐거울 때 즐거워해야 한다. 사람은 슬플 때 슬퍼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인생길의 삶의 굴곡을 통해 즐거워할 때 즐거워하고 슬퍼할 때 슬퍼하는 인생이 되어가야 한다. 즐거움이 즐거움으로 느껴지고 슬픔이 슬픔으로 느껴지면서 자신의 본성을 깨우쳐 갈 때 인생의 맛과 멋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와 반대의 과정을 거쳐 살아간다면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 된다. 즐거워해야 할 때 슬퍼하고 슬퍼해야 할 때 즐거워하는 것은 극소수의 경우를 빼고는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부분이 인생으로서 가야 할 바른길을 잃거나 자연 질서를 어기는 상황에 이르고 말 것이다.
시경의 “관관저구”(關關雎鳩)는 좀 더 확대해서 해석하면 모든 인생들을 가리킨다. 인생은 남녀로 되어 있다. 인생살이 자체가 남녀가 주절주절 말하며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부부가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이웃이 되기도 한다. 그사이에 즐거움과 슬픔이 동반된다. 이렇게 저렇게 서로들 만났다 헤어지며 짝을 찾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슬픔이 수반되는 것이다. 기억할 것은 즐거움이 그 정도를 잃거나 슬픔이 전체의 조화를 해치게 되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즐거움과 그리스도의 슬픔을 동시에 맛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즐거움에 취해서 즐거움의 의미를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슬픔에 취해서 슬픔의 의미를 잃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만남과 헤어짐에서 즐거워해야 할 때 즐거워하고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하자. 신앙의 짝을 찾아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고 부부가 되고 그렇게 함께 살아가며 즐거워하고 슬퍼하자.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할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의 품격을 더욱 높이자.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찬양을 올린 것처럼 우리도 죽음 같은 슬픔 속에서도 진정한 즐거움의 찬양을 찾아내자. 세상이 온통 즐거움으로 환호할 때 그 안에서 진정한 믿음의 슬픔을 느낄 수 있도록 하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세상을 품으면서도 세상을 넘어서는 신앙의 기품을 품어내는 사람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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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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