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니체의 신화-예술론, ‘야벳’ 문화의 종결
‘그리스’라 하면 신화(神話)가 지배적 특징을 이룬다. 신화는 고대인들이 상상을 통해 가공한 온갖 잡신들에 대한 흥미 있는 허구들이다. 세상의 기원이나 영웅의 위대함을 말할 뿐 아니라 인간들의 공포와 절망, 좌절과 번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모든 신화 중에서 흔하게 오르내리는 신화가 그리스-로마 신화다.
그 신화는 종교적 주제를 신화의 주요 소재로 하면서 역사적 사건들로부터 영웅 신화를 만들어냈다. 매혹적인 환영에 몰두하며 역사와 신화를 섞어 가공한 신화를 실제로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의 종교가 자기 우상을 스스로 만들어 대리 만족하는 위로 장치의 일정한 패턴을 갖는다고 보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잡신(雜神)들은 힘겨운 삶을 처절하게 버티고자 할 때 필연적 결과라고도 짐작할 수 있다. 공포와 절망과 죽음 앞에서 몸서리치는 인간의 처절한 실존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종교와 문학 그리고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유럽 문화만의 독특성을 태동시켰다. 다시 말해 유럽 문화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원동력이 바로 그리스-로마 신화라는 말이다. 비극적 신화를 통해 헤아릴 수 없는 인간 고통의 심연으로 내려갈수록 니체는 그 절망과 경악의 순간에서 타인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운명을 긍정하고 자기 자신을 ‘재창조’할 수 있는 자기 변형과 승화의 순간으로 포착하고자 한다.
유럽 문화가 기독교 역사 대부분을 지배한 지난 시간들도 그 기원에는 (성경의 본래적 진리보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바탕을 둔 문학과 예술이 지배했다고 지적할 수 있다. 주전 9~8세기를 거쳐 그리스 고대 ‘비극시대’를 지나고 헬레니즘이 유럽을 장악하고 기독교와 만났을 때,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유럽에는 (성경권위의 기독교 학문과 예술이 아니라)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학문과 예술이 번창한다.
재언하면, 그리스 신화는 불행과 고통, 좌절과 비극의 냉정한 운명을 담고 있다. 밤새 자란 간(肝)을 독수리의 섬뜩한 부리가 뜯어내는 고통을 매일 견디는 프로메테우스 신화, 어머니와 결혼한 기막힌 운명의 저주 앞에 바늘로 두 눈을 찔러버리는 오이디푸스 신화, 이 이야기들은 인간 삶에 드러나는 갈등과 모순 그리고 비극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온갖 잡신들의 싸움판인 세계 기원과 관련된 ‘카오스’ 신화는 신과 세계 그리고 인간의 본질이 얼마나 경악스러운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어떻게 그리스인들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볼 필요가 있다.
서양 사상과 문화를 근본부터 해체하는 철학자가 니체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서 상호보존이나 조용한 질서와 조화가 아닌 난무하는 ‘상호투쟁’과 혼돈의 삶을 지배하는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간파한다. 카오스, 심연, 충동, 고통, 투쟁, 불안, 추악 등의 개념들을 니체는 어느 철학자보다 삶의 요소라는 관점에서 철저하게 사고한다. ‘무질서’로 해석하는 ‘카오스’는 단순히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니체는 그리스 신화와 그 시대의 문화를 지배했던 ‘무서운 것’을 삶의 필연적 요소로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으며(이를 ‘파토스, Pathos’라고 한다), 자기 긍정과 그 토대인 운명애(運命愛, armor fati)를 서구 문화 이해의 근본 틀로 수립하고자 했다.
니체는 곳곳에서 비극 중심의 그리스 예술을 칭송하는 반면 서구 기독교를 혹독하게 비판한다. 그리스 예술은 공포와 경악을 삶의 조건으로 적극적으로 사고하고자 했다고 평가하는 반면, 기독교는 이러한 삶의 바탕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저주받은 결과라고 단죄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고통의 상황에서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장치를 가공했기 때문이다. 신화를 조작하며 비극을 이겨낼 수 있는 시도를 한 그리스인들에 대해 니체는 “그렇게 유일하게 고통을 당하는 능력을 가진 그 민족이 실존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계속 살아가도록 유혹하는 실존의 보완과 완성으로서의 예술을 삶으로 불러들이는 그 충동이 또한 올림포스의 세계를 탄생시킨 것”(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 3; KSA 1, 35~36쪽)이라고 평가한다. 니체에게는 살고자 하는 충동, 이것이 바로 신화와 예술의 원천이 된다. 니체는 그리스-로마를 이렇게 찬양한다. “그리스인! 로마인! 본능과 취향의 고귀함, 방법적 탐구, 조직과 관리의 천재, 인간의 미래에 대한 신념과 의지, 만사에 대한 위대한 긍정”(프리드리히 니체, 『안티크리스트』, 3; KGW IV 3, 59쪽)의 민족이 그들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니체는 서양 기독교를 ‘충동’과 연관된 심리적 측면에서 그 기원을 추적하여 결국 서구 기독교에 신은 분명 죽었다는 선언에 다다르기도 한다. 니체는 서양 기독교가 그리스인들처럼 자기 운명을 사랑하지 못하고 고통과 비극의 삶을 왜곡시켰다고 비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서구 기독교는 자기 불행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린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로 온 예수께서 구약의 실체임을 선포했을 때 동족 유대인들은 자기 고통의 탓을 예수께 돌려 로마 총독에게 넘겨 십자가에서 죽였다. 여기에서 니체는 유한한 인간의 삶을 자신의 내면에서 긍정하고자 타인을 탓하는 야비한 본성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를 바로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예술에서 찾는다.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를 그 자체로 용납하려는 그리스인들의 문화는 니체 철학의 근본 토대가 된다.
이러한 니체의 그리스-로마 문화 바라기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몇 마디로 정의하기는 무리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절대 진리 성경으로 돌아가 보면 분명한 사실 하나를 정리할 수 있다. 니체에 의해 칭송받았던 그리스-로마 신화와 그 예술은 노아의 셋째 아들인 유럽인의 조상인 ‘야벳(Japheth)’ 후예의 정점이며 종결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야벳의 후예가 세계 문화사적으로 왜 번성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니체 철학과 연관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론에 무책임하게 의존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다. 하지만 서구 기독교가 종말을 고하고 이를 받아들인 한국 기독교의 몰락을 보면서 우리는 백여 년 전에 그리스 문화를 칭송하면서 서구 기독교의 몰락을 예리하게 예언한 야벳 문화의 후예인 니체의 말을 듣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신의 죽음’이라는 니체의 말은 지금까지 유럽 문화를 지배한 서구 기독교가 더 이상 야벳 후손의 문화를 넘어설 수 없다는 말로도 새겨볼 수 있다. 현재 세계 문화사의 흐름이 (서남·중앙·동남) 아시아에 집중하는 사건은 분명 단순한 역사의 흐름은 아니다. 야벳 후예들의 문화가 정점을 지나 종언을 고하는 사건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는 셈족 문화의 회복이 극동(極東)에 영향을 미치고 이제 전환점을 돌아 마지막 남은 예루살렘 셈족에게 다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가 이것을 얼마나 의미 있게 파악했는지 그 여부와 상관없이, 창대했던 야벳 문화는 이제 셈족 내에서 기거해야 하는 필연성을 니체는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26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창 9: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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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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