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공자의 인생길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자왈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입,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
논어 제2장 위정에 출전하고 있는 내용으로 공자의 한평생의 여정을 보여주는 유명한 구절이다. 그 해석은 이렇다.
“공자가 말했다. 나는 15세가 되어 배움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나 자신의 세계를) 세웠으며, 40세에는 모든 사리에 대한 의혹이 없어졌고, 50세에는 천명을 알았고, 60세에는 귀가 순해졌으며, 70이 되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따라 살아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사마천의 세가에 따르면 공자는 아버지 숙향흘(叔梁紇)과 어머니 안징재(顔徵在)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승에 의하면 아버지는 70세이고 어머니는 그의 세 번째 부인으로서 16세의 어린 소녀였다. 이 두 사람이 혼인하고 니산(尼山)에 거처하면서 낳은 아들이 공자다. 니산의 언덕이 짱구 같이 생겼는데 태어난 공자의 머리가 그 니산의 언덕 모양을 닮고 있다고 하여 그의 이름을 ‘구’(丘)라고 하였다. 공자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 안씨녀(安氏女)와 살아가면서 과부의 자식으로 멸시와 고난의 인생길을 살아야 했다.
공자 당시에는 배움의 길로 들어서는 나이가 대체로 15세 정도의 청소년이 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배움은 소위 ‘대학’(큰 배움)이다. 대체로 7세를 전후한 남자 아이는 서당을 다니며 소학을 배운다. 소학이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예절과 관계된 것을 익힌다면 대학은 왜 그러한 예절들이 필요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공부를 주로 한다. 즉 본문의 배움은 대학(greet learning)으로서 인생과 세상일과 우주만물의 이치들을 바르게 터득하는 공부를 가리킨다.
‘뜻’(志)은 ‘마음이 가는 바’(心之所之)이다. 뜻을 지닌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사람의 마음이 그곳으로 향해야 한다. ‘세운다’(立)는 것은 가지고 있는 뜻을 생각하기를 싫어함이 없게 되어 스스로 세워 그것을 굳게 잡아서 더 이상 뜻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 뜻이 꿋꿋이 세워져 있는 것을 말한다. ‘불혹’은 사물의 이치에 대하여 더 이상 의심이 없게 되어 앎이 분명해져서 굳이 지키려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천명’은 하늘의 도의 유행으로서 만물에게 부여되어 있어서 모든 사물의 당연한 도리의 근본 원인이다. 이것을 알면 아는 것이 지극히 정미해져서 미혹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순’은 모든 소리를 마음으로 통하게 들어서 거슬리거나 거리낄 것이 없어지고, 앎이 지극해져서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이치를 터득할 수 있음을 말한다. ‘종심소욕불유구’는 소위 자기 마음(의지)대로 살아도 스스로 법도에서 벗어나지를 않아서 늘 평안하게 행하는 사람이며 억지로 힘쓰지 않아도 중용을 이루는 사람을 가리킨다.
논어는 공자가 생전에 말했던 것을 그가 죽은 후에 제자들이 기억들을 더듬어서 기록한 책이다. 따라서 본문에 따르면 공자는 살아 있는 성인의 생활상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계 안에서는 모든 인간은 부족한 존재들이기에 살아서는 성인이 될 수 없다는 교리가 널리 퍼져있다. 장로교의 예정론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인은 죄를 범하더라도 다 용서되며 심지어 앞으로 지을 죄까지 용서받는다고 설교되기도 한다. 이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죄인인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는 한 결코 죄는 용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을 때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고 죄의 용서를 구하여 죄 사함을 받을 때에만 구원이 가능하다. 더욱이 구원과 죄의 용서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써 어떠한 인간의 말이나 주장에 하나님이 영향을 받지 않으시고 스스로 판단하여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은혜 중에 하나다. 따라서 죄인이 자신의 죄를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그 사람을 예정론에 따라서 용서해준다는 식의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공언은 거짓이거나 권한 남용이다.
선한 그리스도인은 공자의 인생살이 못지않게 살아서 의로운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즉, 선한 그리스도인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뜻을 두어야 한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서서 세상의 어떤 일로부터도 유혹받지 않으려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에 정통하려 해야 한다. 세상의 사태로 인해 말씀을 의심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말씀을 거스르거나 배반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거나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지 않을 때 그래서 우리 각자의 생각에 따라 살아야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실천하는 것이 되게 해야 한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성화 없는 구원은 없다. 하나라도 죄가 용서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예정론을 핑계하여 과거 우리의 죄와 앞으로 지을 죄가 무조건적으로 용서될 것이라는 주제넘은 억지는 삼가자. 그 대신에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참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자. 살아 있는 동안에 사도 바울의 충고대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자.”(빌2:12) 온전함으로 나아가기를 전심으로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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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효는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사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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