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6-04-24 19:1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니체의 말, ‘이 사람을 보라!’


“풍부한 생명의 충일과 자신으로부터 이루어진 데카당스 본능의 은밀한 활동을 내려다보는 일, 이것은 내가 가장 오래 연습한 것이자 내 특유의 경험이다.”<김정현, 「1940년대 한국에서의 니체수용: 이육사, 김동리, 조연현의 문학을 중심으로」, 『니체연구』 제26집(한국니체학회, 2014년 가을), 329쪽 재인용. 이하 인용은 괄호에 쪽수 기입함.>

앞의 인용은 니체가 정신병으로 쓰러지기 전에 쓴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에 기록한 내용이다. 이 책 제목의 출처는 성경이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로마 병사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예수님을 때린다. 그리고 빌라도는 군중들 앞으로 예수님을 끌어와 자신은 예수님한테서 어떤 죄도 찾지 못하였음을 유대인들에게 공포하면서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이 사람이로다’라고 말한다.(요 19:5)
니체는 이 표현을 자신에게 사용하여 평생 저술했던 자기 저서들에 대해 평가를 해 본다. 앞의 인용에는 ‘생명의 충만함’과 동시에 ‘데카당스의 본능’이 나타나 있다. 니체 평생의 정신적 여정을 지배하는 두 가지 요소를 말하고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생명의 충일함은 플라톤과 서양 기독교가 억압하고 짓눌러 왔지만, 여전히 약동하는 인간 삶의 근원에 대한 확인이다. 인간의 신체에서 무한한 동력으로 약동하는 생명과 그 생명이 약동하면서 일으키는 ‘생성의 결백성’을 니체는 자기 철학의 근원이었음을 고백한다. 
이와 동시에 니체는 생명의 생성 논리가 왜곡된 경우도 지적한다. 유럽의 정신문화를 지배해 온 또 다른 본능으로 ‘데카당스’가 그것이다. 이 본능은 생성의 결백함이 충일한 신체 속에 잠복하여 그 몸을 갉아먹으며  유럽 정신문화를 피폐하게 만든 불가피한 또 다른 삶의 요소다. 자연적인 것보다 인위적인 것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생의 퇴락과 퇴폐를 마치 저항 정신으로 간주하는 왜곡된 문화 풍조다. 퇴폐주의자(decadent)는 기괴한 행위들을 삶에 대한 탐닉과 열정이라고 보며, 현실에 대한 반감과 자아에 대한 근본적인 불만족을 성적인 관능과 도착 증세로 표현하기도 하며 그러한 행위들을 예술적 활동으로 정당화한다.

생명의 충일함과 더불어 반드시 함께 확대되는 삶의 퇴폐성에 대한 통찰이 니체 철학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니체의 이러한 철학적 전제가 우리에게도 소개되고 또한 니체 사상을 통해 고통스러웠던 자기 시대를 견뎌내기 위해 우리의 지성인들이 사용했던 시기가 있었다. 중일전쟁(1937), 국가총동원법(1938) 그리고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 1941)으로 이어지며 점점 극악해지는 일제의 강제동원과 수탈 속에서 사유의 뿌리를 니체에게 두려는 문인들(이육사, 김동리, 조연현)이 있었다. 자신뿐 아니라 민족정신의 실체 정립을 세계 문명의 흐름 속에서 수립하는 것을 시대적 과제로 삼았던 이들은 시대 극복의 대안을 니체로부터 가져온다.(앞의 논문 312~325 참조)

흥미로운 사실은 항일운동가와 민족주의자 그리고 친일파와 반민족주의자로 분류할 때 당시 지식인들의 사상적 기저에는 모두 니체가 함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육사는 조선 문화를 창조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저항을 위해 니체를 주목한다. 이육사의 시 「광야」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항일투쟁에서 학수고대하는 자유와 해방의 염원을 장차 도래할 니체의 신(神)인 ‘초인’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김동리는 서양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고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고취하여 인간성 회복을 위한 ‘휴머니즘 운동’을 위한 사상적 기반을 니체에게 찾고자 했다. 김동리는 일본의 침략 이데올로기인 ‘대동아공영권’을 만든 ‘제2세대 교토학파’를 통해 니체를 접한다. 이 학파는 자신들의 전쟁을 통해 서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침략과 수탈의 핑계를 당시 유행하던 니체를 사용한다. 김동리는 이러한 니체를 ‘인간성의 창조 의식’을 고취하여 민족정신에 기반을 둔 휴머니즘 정립과 세계사적 사명을 구현하기 위해  니체의 ‘운명에 대한 자기 자각’을 수용한다.

또한, 친일행적과도 연관된 문학 비평가 조연현도 니체 철학에 사상적 기반을 두고 있었다. 1942~43년 일제의 파시즘을 옹호하는 10여 편의 일문 평론도 니체에 기반을 두고, 일제의 대동아전쟁을 옹호하기 위해 니체의 권력의지를 ‘투쟁 철학’으로 변모시킨다. 종래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는 ‘싸움’을 강조했으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과 제국주의 전쟁의 승리를 연관 지어 일제의 승리를 위한 ‘전투 철학’을 고무하여 군국주의의 전쟁을 옹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연현은 니체 철학이 ‘야만주의’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해방 후 그는 ‘시적 정서의 고양’을 통해 니체의 사상을 탈정치화하여 ‘생명’과 ‘창조’를 중시하는 자신의 ‘생리(生理) 문학론’의 기초로 삼는다. 그는 창조 의지를 강조하면서 니체의 개념을 빌어 ‘자기 극복과 자기 개혁을 위한 테러리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히틀러의 나치당이 저질렀던 ‘홀로코스트’와 일본 군국주의가 조선과 중국 그리고 아시아에서 자행했던 수많은 학살의 배후에 신의 죽음을 말했던 니체가 있었다. 동시에 그러한 야만주의와 데카당스의 문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했던 당대의 수많은 지성인들의 고민에도 ‘초인’을 소개한 니체가 함께하고 있었다. 니체는 스스로 시대가 알아주기에는 너무 일찍 왔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시대적 보편적 상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아시아에서 자행한 수많은 학살의 비극을 부추겼던 한일 지식인들은 니체를 써먹고 있었다. 동시에 그 시대를 견디고자 몸부림치면서 생존하고자 했던 지식인들도 니체를 읽고 있었다. 성도로서 내 고민은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가?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고 예수님께 묻고, 유대인들에게 그 예수님을 재차 소개하는 이방제국 로마의 총독 빌라도의 말을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사람을 보라!’(요 19:5)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사 28:13)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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