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니체 이후의 현대철학 〈121〉
니체의 미래 여성관(2) :
남성의 행태를 모방하지 말라!
“유럽의 서너 문명국에서는 몇백 년 동안 교육에 의해 여성들에게서 원하는 모든 것을, 즉 원하기만 한다면 여성에게서 남성까지도 만들어낼 수가 있다. (……) 여성들은 그러한 영향 아래 언젠가는 남성들의 덕과 감정을 몸에 익히게 될 것이며 동시에 물론 그들의 약점과 악덕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니체, 프리드리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김미기 옮김, 책세상, 2001, 341쪽. 이하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로 줄임.)
위의 인용은 니체가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던 여성 해방 내지 여성 평등권에 대해 지적한 내용이다. 여성 해방의 방향이 남성들의 특질에 점점 익숙하게 될 것을 예언하면서 그것이 미래의 여성에게 많은 약점과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단하고 있다.
그런데 니체는 남성 중심의 교육 제도가 주도하는 ‘여성계몽’은 ‘음모’의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자립을 원하는 것은 죄악이 아니지만, 남성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계몽하는 일에 대해 니체는 “유럽이 추악해지는 최악의 진보”(니체, 프리드리히, 『선악의 피안』, 김정현 옮김, 책세상, 2009, 222쪽. 이하 니체, 『선악의 피안』으로 줄임.)라고 평가한다. 이것은 동시에 ‘계몽’이니 ‘자유’니 ‘해방’이니 하는 남성들의 말에 여성의 고유성과 특질 그리고 잠재적 가능성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여성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적어도 150여 년 전 니체가 보기에 여성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남자에 더욱 유리한 방향으로 길들여지는 존재였다. “여자 친구이며 조수이고 아이를 낳는 여자이자 어머니이고 가장이며 관리인이어야 하며, 게다가 아마 남편과는 무관하게 자기 자신의 직무를 맡아야만 하는 좋은 아내는 동시에 첩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그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이다.”(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340쪽) 타고난 성(sex)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만들어가는 성(gender)에 대한 강조는 니체가 볼 때 시대적 이데올로기에 종속될 우려가 있었다. 이미 짜여진 남성 중심의 틀이라면 여성의 몸부림은 점점 남성 중심의 관습에 얽매이는 자기 말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니체는 우리나라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에서 여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을 경계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의 김나지움 교육까지 소녀들에게 전수하는 것은 안 된다! 재치 있고 지식을 갈망하는 불같은 젊은이들을 흔히 교사들의 복제품으로 만들고 마는 그 교육을.”(앞의 책, 331쪽)
니체가 우려한 것은 여성해방운동이 일시적인 시대 유행이 되어 결국 여성의 본성을 더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지기 이전의 고유한 잠재성을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미래 여성의 과제다. 모방과 답습이 아닌 자신의 고유성을 창조적 행위를 통해 부단히 실험해 가는 것이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
구태여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성의 고유성이 무엇인지 (루 살로메와 이루지 못한 사랑을 했던) 철학자 니체의 고민이었다. 니체가 보기에 여성이 추구하는 사랑은 “아무런 고려나 유보를 하지 않는 영육의 완전한 헌신(……)이 여성의 사랑이다.”(니체, 프리드리히, 『즐거운 학문』, 안성찬 외, 책세상, 2005, 362쪽) 무조건적 헌신과 자기 포기의 무한한 열정이 여성의 본성이다. 남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애타게 여자를 찾는 것도 바로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여성해방운동이 남자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쉽게 모방하려는 것을 질타한다. 여성해방운동은 우선 남성을 경계해야 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남자들이야말로 여자들을 타락시킨다. 여자의 모든 결함을 개선하고, 그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것은 남자들이다. 왜냐하면, 남자들이 여성상을 만들어내고 여자들이 그 상(像)에 따라 자신을 만들기 때문이다.”(앞의 책, 134쪽)
그리고 니체는 여성의 ‘외형에 대한 치장 능력’은 자기 개발이 아니라 자기 말살의 내리막길이 되지 말아야 함을 경계한다. 여성의 본성에 속하는 자기꾸밈의 기술은 발전하면 할수록 남성을 자극하는 것은 사실일지 몰라도 그것이 자기 실현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의 큰 기교는 거짓말이요 그 최고의 관심사는 가상이며 아름다움이다. 우리 남성들은 고백하도록 하자: 우리는 여성의 바로 이러한 기교와 이러한 본능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니체, 『선악의 저편』, 223쪽)
맹수의 야수성을 숨긴 여성의 특성을 니체는 “장갑 아래 숨겨진 호랑이 발톱”(니체, 『선악의 저편』, 231쪽)에 비유한다. 자기 욕망과 무한한 헌신이 교차하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여성의 본성은 모순과 갈등, 대립과 투쟁을 본질로 하는 생명체의 가장 생생한 현장이기도 하다. 도덕적인 평가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탐욕과 무자비 그리고 헌신과 희생이 혼재하고 있는 생명의 실제를 역력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다. 니체의 일관되지 않는 여성관에도 불구하고, 생명체의 모태(母胎)인 여성에 대한 니체의 저돌적인 평가는 19세기부터 다루기 시작하여 현재도 진행 중인 여성의 제자리 찾기에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동시에 그의 상호 모순된 여성관 그 자체가 여성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음을 방증한다.
인류 시조 아담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사단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고 자신에게도 준 하와를 다음과 같이 부른 바 있다. 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우리는 성경 전체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할 과제 하나를 더 갖는다.
아담이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불렀으니, 그 여자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창 3:20/바른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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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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