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영혼의 죽은 신, 신체의 살리는 신
“인간은 (영혼이 아니라) 신경체계를 가지고 있다.”(KGW VII 3 14(179), p. 155.) 너무나 당연한 명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 세기 전 유럽 사회에 던져진 이 명제는 그렇게 쉽게 수용될 수 없는 명제였다. 서양의 지적 전통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말할 때 서양은 언제나 영혼을 신체보다 우월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니체는 그렇게 보려고 하지 않는다. 신체와는 아예 다른 차원이라고 불리는 영혼 중심에서 인간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결합된 신체의 조직체로서 각각의 기능을 가지고 활동하는 생명체로서 인간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뿐만 아니라 니체는 신경 세포를 기본 단위로 하는 신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삶의 원천으로 보되, 예술 창조자의 관점에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니체에게 몸을 통해 드러나는 생리적 활동성은 가장 활력이 넘치는 예술적 창조의 생생한 현장이다. 니체의 이러한 의도가 담긴 개념이 ‘예술생리학’(Kunst der Physiologie)이다. 유기적 신체의 생리 현상을 창조미학적 차원과 연관시킨다. 즉 모든 생명 현상의 상호연관성이 결국 새로운 창조물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인간의 필연적 창조성을 강조하기 위함도 되지만 인간의 몸 자체를 통해 발산되는 창조 능력을 강조하려고도 한다.
니체가 몸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온몸의 상호연관된 모든 기능을 강조함으로써 그는 인간을 구성하는 본질적 측면들인 이성과 감성, 의식과 무의식의 불가분리적 통일의 현장으로서 신체 기능을 강조한다. 인류 문화의 정점에 있던 개념들, ‘신’, ‘실체’, ‘존재’, ‘자유’, ‘절대자’ 등등 이러한 개념들은 신체와 독립된 것들이 아니라 신체의 생리적 기능들이 서로 융합하면서 일어나는 몸의 현상들이다. 신체는 니체에게 인간 삶의 모든 내적 갈등과 대립, 모순과 투쟁 상황을 모두 수용하면서 생존에 가장 적합한 것을 극적으로 만들어내는 현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는 인간의 활동이 있다. 니체는 이 신체 활동을 예술과 관련짓는다. 온몸의 유기적 활동으로 신체활동이 가능하며 순간순간 창조적 의지가 발동함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활동이 일어난다. 니체는 이 활동이 바로 예술가의 창작 영감이 구체적인 예술작품으로 표현되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니체의 언어가 늘 그렇듯이 그는 어떤 개념을 사용하되 그 개념을 스스로 파괴해 버린다. 예술가가 창작 활동에서 기존의 모든 것들을 부정하면서 새로운 창조행위로 몰입하여 도취될 때 그것은 단순한 파괴와 전복의 시도만은 아니다. 그에게 파괴와 전복이 마무리되는 순간은 곧 새로운 작품의 탄생을 통한 정화와 평정의 순간이기도 하다. 온몸으로 모순과 갈등, 대립과 투쟁을 통해 신체 활동이 가능하듯 예술가에게도 격정과 고요가 교차하고 창조와 파괴가 개념으로 포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엄습한다. 예술생리학이 니체 이해에서 중요한 이유는 온몸에서 일어나는 파괴와 창조의 신체활동이 이제까지 신체와 무관하게 존재했던 ‘영혼,’ ‘정신,’ ‘절대자,’ ‘존재’와 같은 개념들이 신체활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모두 개념조작에 불과하다는 것도 니체의 평가이지만, 몸의 생리를 예술적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형이상학적 개념들은 전쟁터와 같은 온몸의 극단적 활동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합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형이상학적 개념들, 니체에게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다. 단, 신체 활동의 필연적 결과물이다.
니체의 이러한 명제를 받아들이면, 모든 종교 현상은 신경조직의 결과물이 된다. 지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의 분리를 신체적 활동을 통해 하나로 통합하게 된다. 고도의 정신문화는 신경조직의 정교한 조작물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제까지 영혼이 주관해 왔던 ‘신은 분명히 죽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혼은 내 몸의 활동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의 죽음 앞에 그렇게 슬퍼할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신경조직 세포의 정교한 가공을 거치면 내가 원하는 신, 내 몸이 원하는 신을 얼마든지 내 몸이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체에게는 ‘신체는 살아있다. 따라서 신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신학 명제가 가능하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니체는 신체 중심의 “예술에서 인간은 자신을 완전성으로 즐기는 것”(GD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9:KGW VI 3, p. 110.)라고 한다. 신체와 무관한 가공된 신은 죽여 버리고 이제는 자신의 품속에서 자유롭게 품고 살면서 보호도 하고 필요 없으면 다시 버리기도 하는 반복과정이 자기 몸이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니체의 예술생리학적 진단이 미치는 여파는 바로 신은 죽었다는 명제가 전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인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로 방증하고 있다.
3 모든 백성들이 그들의 귀에 있는 금 고리들을 빼서 아론에게 가져오니 4 아론이 그것들을 그들의 손에서 받아 녹이고 조각 연장으로 다듬어 송아지 형상으로 만드니, 그들이 말하기를“이스라엘아, 이것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다”라고 하였다.(바른성경/출 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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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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