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09-05-27 00:4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적 쾌락과 도덕적 인격


니체를 따라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됨의 가능성으로서 ‘힘에의 의지’를 실현한다는 말도 된다. 힘에의 의지란 이를테면 지배하려는 욕구다. 이는 살아있는 한 지배하고 동시에 지배당해야 하는 것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성장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에너지로 이해함이 더 낫다. 생존 에너지이긴 하되 반드시 권력지배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의지다. 그런데 니체가 말하는 지배의지는 타인지배의 성격보다는 자기자신의 극복과 관련이 깊다. 현재의 자신을 가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태도다.
  달리 말하면 이 의지는 ‘내적인 자기극복’을 말한다. 즉 내면적으로 자신의 인격을 쉼 없이 실현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니체가 “진리는 힘에의 의지를 위한 필연적 가치이다”라고 말할 때, 이는 주어진 상황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려는 의지에 쓸모 있는 것들이 진리가 된다는 것을 일컫는다. 삶을 유지하되 내면의 자신을 쉼 없이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지식들 말이다. 이러한 니체의 관점을 인간의 본성 특히 ‘성적 쾌락’에 적용한 철학자가 미셸 푸코다.
  푸코는 성적 욕망을 인간이 자신의 인격을 만들어가는 주요한 동력으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성적 욕망은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데 유용한 가치이며, 그래서 삶의 진리가 될 수 있으며 또한 자기 자신을 극복하려는 힘에의 의지에 봉사한다. 푸코는 이와 관련된 예를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가져온다.
  성적 쾌락을 의미하는 그리스 어는 ‘아프로디지아’(aphrodizia)이다. 그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왔다. 그리스 잡신들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다. 우라노스라는 신이 포악하기 그지없었다. 자기 자식들을 모조리 잡아먹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아들 크로노스라는 신이 반란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 방법이 괴이하다. 크로노스가 아버지의 생식기를 잘라 버린 것이다. 생식기가 잘리면서 생겨난 딸이 성적 욕망의 신 ‘아프로디테’이다. 푸코는 고대 그리스 사회의 성적 쾌락이 도덕적 주체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계기임을 보여주려고 한다.
  푸코는 성적 쾌락과 아울러 이것을 극복해 가는 주요한 개념으로 두 가지를 더 들고 있다. ‘엔크라테이아’(enkrateia)와 ‘소프로수네’(sophrossune)다. 엔크라테이아는 자신을 도덕적 주체로 세우기 위해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것으로 자제 혹은 금욕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소프로수네는 절제라는 말로 새겨볼 수 있다. 엔크라테이아는 소프로수네의 조건이다. 절제가 가능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행하는 엄격한 제재가 엔크라테이아이다. 여기에는 이미 강한 본능인 아프로디지아와의 긴장과 대립 그리고 투쟁이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관계 속에서만 도덕적 주체가 만들어진다.   
  이처럼 푸코는 고대 사회의 절제의 미덕을 탐구함으로써 성적 쾌락을 통해서 어떻게 도덕적 주체가 구성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성적 욕망과 쾌락을 결코 부정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정립해가는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된다. 뿐만 아니라 푸코는 도덕적 주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욕망과 쾌락의 본능이 그 근간을 이루어야 함을 보여준다.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본능이 가장 도덕적인 품성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금욕의 엔크라테이아와 절제의 소프로수네는 그만큼 더 의미 있고 중요한 자기극복과 자기완성의 계기가 된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수사학적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절제를 할 수 없는 인간이 가장 어리석은 동물과 어디가 다르단 말인가?’ 도덕적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 절제가 갖는 필연적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육욕의 본능은 더 이상 부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도덕적 본성을 실현하는 토대가 된다. 부정적으로 평가받던 성적 쾌락은 가장 고상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절대자인 신의 죽음과 더불어 선과 악에 대한 모든 주도권을 이제는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다는 선언이다. 동시에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죄성의 고백이다.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창3:22)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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