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창조행위로서 글쓰기: 신이 되고픈 몸부림 !
20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는 언어학은 기독교적 언어관을 근본부터 부정하고 있다. 기독교 언어관을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태도라고 본다면, 현대 언어학은 신의 계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이들에 따르면 언어를 통한 문자화 이전에는 객관적 의미를 담고 있는 대상 자체란 없다. 오히려 문자를 활용함으로써 혼돈스러운 관념들이 질서 있게 배치되고 그러한 과정에서 의미가 만들어진다. 항상 만들어지기 때문에 객관적 의미란 무의미한 말이 된다.
이러한 현대 언어학에는 인간이 사용하는 갖가지 기호와 표식들 그리고 문자에 대한 절대적 의존이 반영되어 있다. 서양 사상 특히 기독교에 종속되었던 서양철학은 해방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문자 행위의 고유성에 초점을 맞춘다. 즉 문자적 글쓰기의 본래적 기능을 회복시키려는 것이다. 의미 생성과 관련해서 말한다면 불변의 의미가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이 문자적 글쓰기를 통해서 드러날 때 비로소 생성된다.
이러한 주장에는 영원한 진리라고 수 천년 동안 전수되어 왔던 하나님의 계시 기록인 성경에 대한 부정이 담겨있다. 그 동안 문자는 단지 신의 말씀을 담는 도구에 불과했다. 기록된 문자를 신성시 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도 문자 자체의 소중함이 아니라 문자에 영원한 진리가 담겨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자는 신의 진리를 다시 재해석하는 주석(註釋)의 수단에 불과했다.
그런데 데리다와 같은 현대 철학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태도는 문자와 문자적 글쓰기 과정을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린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이들은 불변의 가치를 담는 수단으로서 기호와 문자가 아니라, 그 시대에 어느 정도 타당한 의미와 텍스트를 창조할 수 있는 원천이 바로 기호와 문자임을 주장하려고 한다.
더욱이 이러한 문자적 글쓰기의 원천을 강조하는 자들은 불변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성경 텍스트에 대한 입장도 근본적으로 전도(顚倒)시킨다. 기독교의 핵심 이론들이 오히려 기호를 통해 생성된 결과물임을 주장한다. 결과물 가운데 가장 심하게 조작되고 왜곡된 체계가 성경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현대의 문자적 글쓰기 활동은 우선 성경의 완전한 해체와 신적 계시 진리의 파괴를 요구한다고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의미창조와 텍스트 창조의 원천이 문자 자체의 고유한 권한임을 수립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는 니체가 말한 절대가치인 ‘신의 죽음’을 더 분명하게 확증하려는 시도이다. 신의 자취라고 할 수 있는 성경을 완전히 분해하고 해체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주로 프랑스 언어철학자들이나 해석학자가 맡고 있으며, 대표적인 철학자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이다. 그는 해체론자로 불리는데, 해체 대상은 서양사상사에서 불변의 의미와 텍스트로 불리던 것들, 대표적으로 ‘성경’이다. 언어학의 개념을 빌려서 설명하자면, 불변의 의미체계라고 불리던 것(시니피에, signifié)은 기호(시뉴, signe)와 기호의 표현(시니피앙, signifiant)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지 독립된 객체로 있을 수 없다. 독립된 존재가 바로 신이며, 독립된 의미가 성경이라고 본다면, 데리다 해체론의 핵심은 분명히 기독교 사상에 대한 전면적 부정과 파괴에 있다.
데리다 이후 문자적 글쓰기는 우선 기독교의 가치를 부정하는 일로 시작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글쓰기 행위는 로고스(영원한 진리)의 억압에서 벗어났다는 뜻이 된다. 뿐만 아니라 텍스트와 의미는 문법화라는 새로운 과정을 통해서 생성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글쓰기 행위가 의미생성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절대적 존재 내지 절대 가치라는 신도 허구의 산물이 되고, 객관적 진리와 본질도 문자 억압의 결과가 된다. 그래서 현대의 언어는 그러한 대상들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비록 창작이 또 다른 허구의 반복이 된다고 하더라도 우선은 성경 텍스트의 억압에서 해방되는 것이 중요하다. 수 많은 제약(制約)과 억압의 방식들이 있지만 유독 성경 텍스트의 부담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 된 시대, 이러한 시대가 니체의 후손 데리다가 주도하는 현대 사상이다. 데리다는 언어의 용도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고정된 의미를 재현(再現)하는 글쓰기 아니라 의미를 생산하는 글쓰기로, 끝없는 새로운 읽기와 쓰기의 동기를 유발하는 글쓰기를 강조한다. 가장 귀한 의미를 담아놓았던 텍스트도 한 순간 미련없이 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바로 창조적 글쓰기임을 역설한다.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는 인간은 적어도 그 순간은 절대적 의미를 창조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고 본다. 정말로 한 순간이라도 절대자가 되고자 한다. 자신의 음성도 신의 음성과 같은 권위를 갖고 싶어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이 이러한 태도에 대해 공감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피조물들은 어리석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하나님의 영광-필자 주)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19:2~4)
<다음 호에는 ‘니체의 후손 마틴 하이데거’를 다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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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니체의 후손, 마르틴 하이데거 |
데리다의 문자학(grammatology): 성경 해체 전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