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먼저 하나 나중에 하나 마찬가지
物格而后知至, 물을 바로 탐구한 이후에 앎이 이르고,
물격이후지지,
知至而后意誠, 앎이 이른 후에 뜻이 진실해지고,
지지이후의성,
意誠而后心正, 뜻이 진실해진 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
의성이후심정,
心正而后身修, 마음이 바르게 된 후에야 몸(자신)이 닦이게 되고,
심정이후신수,
身修而后家齊, 자신이 닦인 후에야 집안이 가지런히 되고,
신수이후제가,
家齊而后國治, 집안이 가지런히 된 후에야 나라가 다스려지고,
제가이후국치,
國治而后天下平. 나라가 다스려진 후에야 온 세상이 평안하게 된다.
국치이후천하평
(『대학』 경문1장)
본문은 만물에 대한 바른 이해가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데 기초가 됨을 강조한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부모나 형제 등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관계해 가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나 경험을 의미한다. 물격은 이 모든 일에서 바르게 대처해 나가는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
앎이 이른다는 것은 사람이 모든 일에 대한 바른 처리의 능력을 갖추었을 때 생겨나는 깨달음의 경지라 할 수 있다. 이 앎은 어떤 것을 암기한다거나 어떤 과목에서 점수를 맞는 것과 같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것이 아니다. 삶이 전개되는 순간마다 순간순간의 변화에 바르게 맞출 수 있는 사람에게만 느낌으로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앎이다.
앎을 느낀 사람은 그 뜻을 진실하게 할 수 있다. 모든 일이나 사태에 바르게 적응할 수 있고 그래서 앎이 느껴지는 사람이 자신의 뜻을 모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뜻이 진실하지 않은 자가 어떤 일이든 바르게 처리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무슨 일에서나 뜻을 진실하게 해 나가야 한다.
자신의 뜻이 진실하게 되고 나면 그 사람의 마음이 바르게 된다. 흩어져 있거나 뒤죽박죽이던 마음이 정리된다는 말이다. 이전에는 간혹 사적으로 욕심을 내곤 하던 마음이 이제부터는 정도를 찾게 된다는 말이다. 어떤 사태에 직면하든지 그 일의 바름을 따라 뜻이 진실해지고 마음도 바르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을 바르게 한 사람은 자연히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통해서 스스로를 수련하게 된다. 모든 경험하는 일들에 대하여 그 대처가 바르고 이 바른 대처를 통해 앎이 느껴지고 나아가 자신의 뜻과 마음이 진실하고 바르게 된 사람이 이 과정 자체를 통해서 자신이 수련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물격과 치지와 성의와 심정은 자신의 몸과 마음의 덕을 닦아가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들인 것이다.
스스로를 수련하는 사람의 집안은 가지런히 다스려지게 된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수신을 실천하는 부모를 본받지 않는 자녀가 있을까. 수신하는 남편을 본받지 않을 아내가 없고 수신하는 아내를 본받지 않을 남편이 없을 것이다. 집안에 평화가 있게 된다.
집안이 가지런히 다스려지게 된 후에 나라가 편안해질 수 있다. 집집마다 그 가족들이 서로를 조심해서 서로를 본받으며 살아가는데 그런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와서 사회나 나라를 어지럽힐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면 온 세상에 평안이 온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모든 사람이 사물의 본 모습을 찾고 알아가면서 그 뜻이 진실해지고 마음이 바르게 되어 자신을 수련해나갈 때, 그리고 자신의 바른 모습으로 가정이 관계를 맺어가고 이런 가정들이 모여 나라를 이루어갈 때 온 세상이 편안해지리라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이상에서 대학은 ‘물격’을 먼저 하든 ‘평천하’를 먼저 하든 사람이 수신을 전제로 해서 바른 통치를 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중에 어느 부분에서 먼저 하든 실질적으로 유학이 말하는 중심 사상은 수기치인이 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대학은 모든 인간은 물격에서 시작하든 평천하에서 시작하든 반드시 이러한 8단계의 삶을 따라 살아야만 수기치인의 인간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넓게 해석하면 이 조건에 맞지 않는 자는 유학이 말하는 사람다운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10절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등이 소개되고 있다. 통칭 이 내용은 팔복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말씀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늘의 복을 받을 자와 받은 자는 반드시 이 여덟 가지 마음을 품고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심령이 먼저이든 온유함이 먼저이든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음이든 그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여덟 가지 마음을 품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대한의 기독인들은 한 때 유학이 세상의 풍속을 지배했던 조상들을 선배로 모시고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유학을 허락하신 이유가 혹시 우리로 하여금 그들의 철저한 유교적 생활태도를 본받도록 하려는 교훈으로 삼으려 하심이 아니겠는가. 대학의 8조목을 그렇게도 따르려 했던 선배들의 생활태도를 모형으로 해서 오늘 대한의 신앙인들은 마태복음의 팔복을 반드시 실천하도록 하자. 어느 것이 먼저이든 또는 나중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음을 가난하게 하고 애통해 하고 온유하게 하자. 환난과 핍박 멸시를 참고 오히려 긍휼히 여기자. 청결하게 하고 화평케 하자. 우리 기독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족과 민족을 향하여 팔복의 마음을 실천해 감으로써 한국의 기독교를 조용히 펼쳐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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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박사(교육학박사), 백석대 외래교수 |
무엇을 사람의 근본으로 삼아야 할까 |
단순한 앎에서 열매 있는 얻음으로 나아가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