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권력의지’의 생리로서 테러리즘
전 지구적으로 점점 극성을 부리는 테러리스트의 조직 확대는 어느덧 우리의 생활 뉴스가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지구 다른 쪽에서 매일, 아니 우리에게도 늘 다가와 있는 위협이 테러리즘이다. 단순한 소총 무장 조직이 아닌 핵무장 조직으로 무장하고 있다. 나아가 언제라도 닥칠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정보 기술의 테러리즘도 얼마든지 연상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서방은 ‘이슬람 국가(IS, Isla-mi State)’라는 공동의 공격 목표를 설정하고 대테러리즘를 전개하며 중동의 다른 국가들도 끌어들인다. 이제까지는 반미(反美)와 반서구(反西歐))에 있던 중동의 강력한 여론들을 미국과 서방에 합류시킨다. 특히 미국과 외교적이며 경제적 그리고 군사적으로 동맹 관계를 공고하게 한다. 가령 석유를 둘러싼 전략적 동맹관계에 있는 국가들과 집단들의 합종연행을 돕고 그들이 대테러전에 참가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 국가는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전략을 펼친다. 이제까지 자신들에게 가장 가까운 자들까지도 심각한 불안감 속으로 빠뜨린다. 심지어 이제까지 지켜왔던 문화적 유산이나 이념적 동맹자들도 공격하는 지경으로 치닫는다. 이와 같이 테러리즘의 생리는 현재 설정한 목표에 반하면 ‘동족 살육’도 마다하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
포착된 공격 목표를 향해 폭탄과 함께 자신의 한 목숨을 기꺼이 던지는 태도는 다른 동료에게 그렇게 말을 하건 하지 않건 상관없이 이미 그 목표에 따라야 한다는 강한 요구를 포함하고 있다. 잔인하게 반복하는 복수의 메커니즘을 의로운 성전(聖戰)으로 포장하여 테러리즘의 후손을 쉼 없이 양산한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럼없이 폭거를 자행하도록 하는 테러리즘의 폭력적 교조주의는 잔혹성의 증대 없이는 불가능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인간 생존을 지배하는 비도덕적인 생리적 구조의 적나라함을 철학적으로 수립한 니체에 따르면, 권력을 통한 지배의 불가피한 구조로 시작된 폭압은 결코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권력의 본질적 속성은 ‘자기만족이 있을 수 없는’ 구조를 갖기 때문이다. ‘더! 더욱 더!’라는 멈출 수 없는 요구가 권력의 자기 속성이기 때문이다.
잔혹성을 동반한 생명에 대한 무차별적 난자(亂刺)는 니체가 정의한 ‘권력의지’의 구조로 보면 더욱 위협적이다. 왜냐하면 니체가 말하고자 했던 권력의지는 자신의 내면에 고착화되어가는 이데올로기들을 지속적으로 자기비판을 가하면서 자신을 극복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러한 의지를 외부적으로 사용하여 타인을 경시하고 억압하고 폭력을 가하는 것은 권력의지가 가장 왜곡된 형태이다. 그야말로 자기 극복의 의지가 철저하게 왜곡되어 세기말적 퇴폐주의에 함몰되어 몰지각의 가장 극단적인 행태들로 나타난다.
인질 살해 등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이것을 방송 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여과 없이 송출하는 행위는 테러리즘의 고유한 선전책이 되고 있다. 두려운 진단이긴 하지만, 니체가 예고한 ‘허무주의’가 지배하는 미래는 사실상 ‘어떤 장래도 없다’는 경고의 의미가 강하다. 예를 들면 기독교가 성황한 것은 니체의 논리를 따라가면 필연적으로 기독교가 반드시 몰락할 것이라는 필연적 징후가 된다. 니체가 말한 권력의지에 의해 지배당하는 세계의 엄격한 원리 중 하나는 최선과 최악의 진영 논리가 극단적으로 나누어지고 갈등과 대립과 투쟁의 무한한 반복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정체를 점점 파악하기 힘든 세력이지만 그들이 지금도 자행하는 폭력의 심각함과 규모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점점 확산된다는 것을 니체의 개념으로 바꿔보면, 모든 것을 전복(顚覆)시키고자 하는 허무주의라는 ‘괴물’의 활동이 점점 일상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니체가 말한 ‘허무주의’라는 무서운 괴물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대파국의 과정이 진행 중인지도 모른다.
니체는 허무주의를 맞이하기에는 너무 무서운 ‘손님’에 비유했다. 초청하지도 않았는데 그렇다고 맞이해야 하는 것을 피할 수도 없다. 모든 것을 일순간 파괴하고자 하는 테러리즘이 예고된 허무주의의 병적 징후라면, 이 병에 대한 치유는 더 심각한 병을 야기한다는 최악의 악순환을 예고하는지도 모른다. 권력의지가 지배하는 생명체로 살아가고자 하는 한, 더 강한 지배를 통해 급기야 모든 것이 전복되는 거대한 몰락의 길을 가야만 한단 말인가! 이러한 니체의 진단이 무서움을 가중시킨다면, 우리는 바로 내 눈앞에서 항상 일어나는 더 무서운 테러를 볼 수 있는 눈도 필요할 것이다.
5 이처럼 혀도 작은 지체이지만 큰 것을 자랑한다. 보아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큰 나무를 태우는가. 6 그 혀는 불이며, 불의의 세계이다. 그 혀는 우리 지체 안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인생의 바퀴를 불사르니, 지옥불에 의하여 불살라진다.(바른성경/ 약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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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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