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도, 함이 없는 함 (Tao, Doing Without Act)
道常無爲, 而無不爲。
도상무위, 이무불위.
도는 언제나 함이 없다. 하지만 하지 아니함이 없다.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화.
제후와 왕들이 그것을 지킨다면 만물은 저절로 교화되리라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화이욕작, 오장진지이무명지박.
누군가 교화해서 무엇을 만들고자 한다면 내 장차 이름 없는 통나무로 그를 제압하리라.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무병지박, 부역장무욕。
이름 없는 통나무는 또한 욕심 없음으로 나아가리니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불욕이정, 천하장자정.
욕심을 내지 않아 고요하면 세상은 저절로 자리 잡히리라.
(노자, 37장)
도는 언제나 함이 없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랬다. 언제까지 그럴지도 도만이 알 뿐이다. 인간세가 유지되고 있고 자연과 우주가 여전히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도가 있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도는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세상의 왕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기만 하면 그것을 떠벌인다. 그래서 조용히 있었으면 그 일이 더 오래도록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오히려 욕이 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를 교훈하기 위해 노자는 도가 우주만물과 인간세상을 존재하게 하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듯이 침묵하는 덕성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제후나 왕들이 이러한 도의 덕을 실천할 수 있으면 그들이 다스리는 사람들과 자연이 스스로 교화되어질 것이다.
하지만 만일 어떤 제후나 왕이 자신이 사회를 교화시키고자 조작한다면 이름 없는 통나무(이름 붙일 수 없는 순박함 즉, 도 자체)로 그를 박살을 내버리겠다고 노자는 경고한다. 이름 없는 통나무는 자연 그대로의 순박함으로 살아가기에 욕심을 내는 일이 없다. 도는 결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본래의 순박함으로 인해 늘 고요하다. 이 순박함과 고요함으로 인해 세상은 스스로 삶의 질서를 유지해 갈 것이다.
함이 없는 함이기에 도는 순박하다. 순박하기에 고요하다. 만물이 이러한 도의 덕을 따라 서로 순박함으로 행하고 그 행함에 고요하다면 세상의 길이 자연스럽게 질서 잡혀갈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노자가 그렇게도 도와 도의 덕성을 예찬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에서 스스로(저절로) 질서 있게 되었던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의 역사만 보더라도 고조선의 건국 이래로 나라와 나라의 전쟁,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속에서 이루어져 왔을 뿐이다. 유럽문명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그리스와 로마 역시 전쟁과 투쟁의 역사를 보여 왔다 하더라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사실로부터 기독인은 진정한 삶의 길로 나아가야 할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그 길은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말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그분은 태풍이 몰아치면 잠잠케 하였고, 죽은 사람을 만나서는 살게 하였고, 병든 자를 만나서는 고쳤고,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정죄함이 없이 구해주었고, 군중이 모여서 자신을 못 박아 죽이는 그 순간에도 그들을 비난하기는커녕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했다. 그분은 부활했다. 하지만 그 분은 자신이 한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고백했을 뿐이다. 바로 이 사실이 그리스도가 함이 없는 함을 온전히 이루신 분임을 증명한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는 온 인류가 따라 살아야 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기독인은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다. 기독인의 모든 생활이 그리스도의 삶에 따라 저절로 길이 마련되어야 한다. 마땅히 그리스도의 삶에 따라 기독인 자신의 삶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렇게 사는 기독인의 가정에서는 태풍 같은 세상의 풍속도 잔잔케 되어야 하고, 마음과 육체의 병이 위로되고 고쳐질 수 있어야 하며, 죽음도 극복될 수 있어야 한다. 기독인의 생활에서는 진실이 있고, 서로를 격려하는 생명의 보살핌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시며 그분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섬기라고 당부하셨다. 세상의 교회는 이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반드시 이렇게 가르치고 실천해야 한다. 결코 자랑하지 말고 진실함과 생명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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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외래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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