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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작성일 : 13-06-18 20:0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창조의 순간, 인간 무지에 대한 함구령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니체 이후의 현대철학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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ö 񳪽(Emma-nuel Levinas)

“창조의 순간 안에 피조물의 시간의 모든 신비가 있다.”(『존재에서 존재자로』, 서동욱 역, p.122) 유대인 철학자 레비나스는 자신의 옛 조상들이 섬겼던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는 ‘순간’에 대한 지식을 통해 인간의 위치를 더욱 확고하게 설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신의 창조 순간을 유추한다는 것도 납득되지 않지만, 어쨌든 그는 생성과 소멸이 교차하는 ‘순간’을 통해 현실적인 인간 존재의 의미를 더욱 가치있게 정립하려고 한다.
이 철학자는 순간으로 있다가 이내 소멸하는 덧없는 현재를 장차 맞이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더욱 가치롭게 만들어내려고 한다. 인간 중에 가장 지혜로웠던 그의 선조 솔로몬이 고백한 (‘전도서’의) 인생의 무익함을 그는 현재의 소중함을 확정하는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이 철학자에게는 대개의 서양 철학자들이 추구했던 불변의 존재는 그리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불변의 존재는 소진되어야만 현재는 현재로서 살아난다. 다시 말해 현재를 자유롭게 경험하기 위한 조건은 불멸의 자기 자신을 포기해야만 한다. 지속해야 할 자신의 내적 요소를 고집하는 것은 자기 자유의 여지를 그만큼 거부하는 행위가 된다. 왜냐하면 보존의 의무는 현재를 요지부동의 상태로 예속과 굴종을 강요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선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불가피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순간 속에서 체험되는 자유라고 하더라도 이 자유는 자기 존재의 속박도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자기 보호의 무한한 장치에 대한 불신이 거센 만큼 자유에 대한 경험도 분명해진다. 신의 존재도 인간의 본질도 모두 부정할 수 있는 자유는 그만큼 현재의 나를 보존해주는 그러한 의미들을 전면적으로 거부해야만 가능한 모순과 비극의 경험이다. 
이는 자유롭고 싶다고 하지만 더 큰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통감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체험 속에서 경험되는 자기 자신을 레비나스는 ‘주체’라고 한다. 이러한 주체를 상황에 따라 사유나 의식 혹은 정신이라고 칭한다. 자기 부정과 자기 정립의 동시 체험이라는 모순 속에 인간의 자기 주체성은 철저히 자신의 내면적 사건이 된다. 세상을 창조한 신의 의지란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를 통해 신의 의지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레비나스의 의도였다.   
절대적 존재인 신의 죽음을 단언하고 모든 초월적 개념들은 단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권력의지의 산물로 싸잡아 버렸던 니체를 떠올려보면, 레비나스의 시도는 약간의 역류적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가 수립하려고 했던 인간의 자기 정립은 자기 동족의 대량학살(the Holocaust)의 한가운데서 시작했다. 죽어버린 듯한 신의 존재를 부담스럽게 껴안고 있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세계 창조를 가능케 했던 신의 전능성을 붙잡는 것은 더욱 무소용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신적 존재를 의지하고자 했던 최소한의 여지도 모두 없애야 인간의 의미를 스스로 정립하는 기회가 온다고 여긴다. 현실적 갈등의 주인공은 인간 자신이며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순간의 능력도 우리에게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몸부림인 듯하다. 
그의 몸부림에 공감해 보지만, 그가 보았던 성경의 창조는 우리의 관점에서는 접근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 근원적인 비판으로 남는다. 신의 창조는 함부로 우리의 처지와 섞어서는 안 된다. 창조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하신 의지와 계획이 시간과 공간 그리고 형상의 구체화를 통해서 드러난 철저히 신 중심적 계시 사건이다. 창조의 순간이란 신성의 구별된 거룩함이 피조세계로 형상화되는 ‘특별한 곳’이다. 우리의 지적 탐구를 모두 종결케 하는 순간이다.
이 시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뻥’(big bang)!하는 순간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판단을 정지해야 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운운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도 모르는 순간을 하나님의 창조에 대입한 무지의 소산이다. 목숨만 붙어있는 욥에게 맹렬히 쏟아졌던 하나님의 다음 질문을 다시 한 번 새겨보자.

2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이 사람이 누구냐? 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하여라.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다면 말하여라. 5 누가 땅의 크기를 정하였는지, 혹은 누가 땅 위에 측량줄을 펼쳤는지 네가 아느냐? 6 땅의 토대는 무엇 위에 세워졌으며 누가 땅의 모퉁잇돌을 놓았느냐? (욥 38: 2~6/바른성경)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레비나스의 이타적 공동체, 그리스도 없는 세속주의!
찰나, 영원한 제국에 대한 야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