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테러리즘: 허무주의가 낳은 괴물
현재 글로벌 유령이 떠돌고 있다. 바로 테러리즘(terrorism)이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어떠한 폭력도 정당화하는 정책이나 사상을 일컫는다. 21세기를 말할 때 우리는 2001년 9월 11일 알 카에다 요원들이 뉴욕과 워싱턴 한복판에 민항기를 충돌시킨 자살폭탄 테러 사건을 항상 연관시킨다. 사망자 3천 여명, 부상자 6천 3백 여명의 희생자들이 테러의 제물이 되었다.
미국의 근대와 현대를 나누는 사건이라고 할 정도로 충격과 혼란의 사건이었으며, 이는 동시에 보복 전쟁과 또 다른 테러의 전조가 되어 지금도 이슬람 무장 세력은 더욱 집결하도록 고무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에 대한 대대적 타격 작전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목표와 이상의 상실을 전제로 한다. 이는 진리와 허위,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을 반영한다. 테러리즘은 이러한 사실을 더욱 가속화한다. 무엇이 진실이며 거짓인지를 묻지 말라고 하며, 무엇이 선이며 악인지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테러리스트인지 민족의 영웅인지도 따지지 말라는 것이다. 니체에게는 자기 보존과 상승 욕구인 ‘권력의지’가 모든 생명체의 근본 원리다. 권력의지의 중요한 특징은 더 많은 힘을 확보하고자 하는 욕망은 ‘이만큼이면 충분하다’는 말을 결코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니체의 권력의지에서는, 아무리 고귀한 도덕적 행위든 포악한 테러든 그 본질에서는 만족이 없어 늘 굶주린 권력의지가 작동하고 있다. 힘과 권력의 상승은 또 다른 파괴의지를 자극할 뿐이다. 미국은 슈퍼파우어의 상징이며 전능하고 완벽한 시스템을 자랑하는 하이 테크놀로지의 정점의 상징이다. 이러한 파워의 실제인 펜타곤과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은, 권력의지의 논리로 보면, 더 큰 파워 게임을 늘 열어놓고 있다. 한 곳에 집중한 권력은 강하면서도 동시에 취약하다. 첨단 기술과 죽음이라는 ‘절대 무기’로 무장한 18명의 자살테러 특공대원들에 의해 만 여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니체는 현대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 곳곳에 도사리는 테러의 위협과 공존하는 우리에게 테러리즘은 ‘모든 것을 허용하라’고 더욱 닦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이며 사회학자이고 미디어 이론가인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는 『테러리즘의 정신』(배영달 옮김, 동문선, 2003)에서 이러한 권력의지의 거대한 분출현상에는 ‘근본적인 적대감’(앞의 책, 13쪽)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이 적대감은 (냉전 방식으로 전개된 제3차 세계대전으로) 공산주의 몰락 이후 이제 또 다른 방식의 전쟁인 ‘제4차 세계대전’(앞의 책, 같은 쪽)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니체의 말대로 모든 것이 허용되는 세계에서는 무엇이 선이며 악인지 구분할 수 없다. 선이 승리하고 악이 사라질 것이라는 변증법적 낙관론은 순진무구하고 유치한 발상이며 거짓 판단이다. 적대감의 위협은 또 다른 적대감을 몰고 올 것이라는 공포를 낳을 뿐이다. 안전하게 살고자 만든 전지전능한 첨단 시스템도 죽기위해 덤벼드는 카미카제 특공대의 반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테러리즘은 어떤 특정한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지구인들의 필수적인 생존 조건이 되고 있다.
이러한 테러리즘의 독특한 점은 행동대원들이 ‘죽음을 즐기고자’ 하는 면이다. 희생했다고 하여 눈물조차 흘릴 필요가 없도록 하는 모티브를 조장한다. 왜냐하면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통해 서방 선진국들은 처참한 광경을 방영하면서 테러의 사악성과 응징의 당위성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자살 특공대들은 그러한 보도가 순교자의 영예와 동시에 천국 보상의 확실한 증거로 보고 자신의 죽음을 ‘즐기려고 한다’. 거대하고 처참한 테러일수록 더욱 감동적인 영웅적 대하드라마로 만들고자 한다.
진리와 정의와 선의 세력을 고정하는 것을 테러리즘은 결코 참을 수 없다. 목적과 이상이 상실된 허무주의 시대에 테러리즘의 갖은 폭력은 최악과 최선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테러리즘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정신과 육체가 모두 순식간 흙먼지로 변하게 할 위협을 안겨다 주고 있다. 허무주의가 이미 오래 전에 예고하였으며 수차례에 걸쳐 치러지는 세계 대전에서 맹활약한 괴물인 아들이 바로 테러리즘이다.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기존의 모든 국가 체제를 능가하는 신령한 나라인 하나님 나라를 설립하셨고 또한 설립하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부터 보내신 성령께서는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를 지금도 성도를 통해 세워가신다. 우리 내에 운동하는 영원한 말씀의 운동력(히 4:12)만이 온 몸에 엄습하는 테러리즘의 잔혹함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랑의 계명’(요 13:34;15:12)으로 세우시는 나라, 어떤 테러에도 견딜 수 있는 나라(히 12:28)가 항상 있다는 진리가 늘 우리 영혼에 임하길 바랄 뿐이다.
52 그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검을 그 집에 도로 꽂아라. 검을 쓰는 자들은 모두 검으로 망할 것이다. 53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께 청하여 열 두 군단보다 많은 천사들을 당장 나에게 보내 달라고 할 수 없는 줄로 생각하느냐?(마 26:52~53)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허무주의와 테러리즘 |
‘성경신학총서’의 완간: 미래 미디어의 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