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시간성의 저주, 초월 본성
우리의 생각 속에는 이미 기억되어 있는 것들이 있다. 의식에 떠오르는 것도 있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기억할 수 없는 채로 있는 것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리고 기억할 수 없는 방식과는 다르지만 현재 없는 채로 생각하는 경우가 또 있다. 즉 미래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목표와 이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면에서 기억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인간은 생각나는 것과 생각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현재의 생각은 ‘있지 않는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 사이에서 발생한다.
하이데거는 시간성과 관련된 생각(사유)의 이러한 구조를 ‘시간에 대한 근본적이며 존재론적인 의미’라고 한다. 근본적이며 존재론적이란 말은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연적 조건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조건을 무시하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그에게 ‘이미 있는 것’ 즉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배제한 인간 현존재란 불가능하다.
인간이 겪는 현실적 체험에는 ‘지금 없는’ 두 가지 방식, ‘과거’와 ‘미래’가 이미 주어져 있다. 이미 지나간 과거와 아직 오직 않은 미래다. 현재는 더 이상 있지 않는 것과 아직 있지 않는 것이 동시에 만들어낸 것이다. 분명히 체험했음에도 절대 재현할 수 없고, 많은 기대와 확신을 갖는다고 해도 절대 체험할 수 없는 것 사이에 현재가 생긴다. 그런데 만약 특정 시각(時刻)의 간격을 없앨 수 있다면 언제나 현재가 된다. ‘언제나 현재’라는 말은 변함없이 지속하는 것에 대한 체험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시각(時刻)의 간격을 없앤다는 것은 속도를 높이는 것과 관련되거나 아니면 속도가 지배하는 차원을 벗어나면 된다. 그런데 그 간격을 없앤다는 말이나 변화와 속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차원에 있는 것이나 모두 현재의 일반적 조건을 넘어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초월(超越)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이데거의 문제 의식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말하는 인간인 현존재(現存在)는 본래부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초월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다.
특정한 시각(時刻, temporality)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서 현존재는 무한한 변화만 거듭하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에 따르면, ‘지금-여기-이렇게 존재하는 인간(현존재)’은 그 바탕에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변화를 주도하거나 혹은 변화 이전의 ‘근원’을 이미 가지고 있다. 하이데거는 변화의 모든 세계와 자연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이러한 시간을 ‘세계시간’(독, Weltzeit)이라고 한다. 세계시간이란 세계가 모두 시간 속에 있다는 말도 되지만, 세계가 시간 속에 있기 때문에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시간을 이해하는 계기도 된다. 나아가 현존재인 인간이 현실적으로 제약을 받는 것 같지만 그 제한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려 한다.
인간이 ‘현재의 시간’에 제한받는다는 사실에서 초월의 가능성이 생긴다면, ‘현재의 시간’은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본래의 근원으로 초월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차별 없이 동시에 경험하거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의 존재를 초월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어떤 특정한 시각에 경험하는 모든 사건은 ‘그때 그 순간’의 제약을 받는다. 예를 들어 지금 나는 사과를 보고 있다. 이 명제는 지금 어떤 시각에 저런 모습으로 있는 사과를 내가 보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특정한 시간에 존재하는 단지 우연한 하나의 사과일 뿐이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이러한 경험에서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사이의 긴장 속에 구성되는 현재의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현재 보고 있는 것을 사과로 경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과거의 것도 아니며 미래의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사과는 과거에 이미 규정했던 사과이며 동시에 아직 경험하지 않은 사과다. 사과를 보는 사건에는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라는 부정(否定)의 사건이 전제된다.
더 이상 있지 않으며 아직 있지 않는 ‘사유방식’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현존재다. 생각하는 인간에게 항상 전제되는 것은 생각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先驗的) 시간 구조다. 이러한 구조는 모든 경험에서 시간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결코 진리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전제를 만들어준다. 동시에 이러한 구조 속에 있다면 이미 인간은 시간을 통해서 시간 세계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시간성, 이것은 인간 스스로 초월적인 존재임을 착각하게 하는 불가피한 본질이다.
<다음 호에는 ‘감성의 본질과 창조 본능’를 다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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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감성(感性) 작용과 창조자 본능 |
인간의 존재 방식과 하나님의 저주 방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