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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작성일 : 13-05-26 14:0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찰나, 영원한 제국에 대한 야욕!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니체 이후의 현대철학 〈70〉


유대인 현대 철학자 레비나스는 인간의 몸과 정신 나아가 무의식의 세계를 인간 자율성의 원천이라고 규정한다. 전통적으로 서양 사상가들은 정신과 무의식의 세계를 신체와는 분리해서 생각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신 세계는 신체와는 차원이 다른 인간 본질의 근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신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을 하나의 사건으로 봄으로써 초월적인 정신세계는 현재의 삶을 지탱하는 요소 정도로 간주한다.
그런데 현재의 삶은 무한한 시간적 흐름 속에 있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현재란 포착할 수 없는 것으로 이른바 ‘순간’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현재의 삶이 움켜잡을 수 없는 순간이라면, 현재는 단지 모든 것이 덧없이 사라지는 소실점이 되며, 현재의 나의 소중한 삶이라는 것도 우스운 에피소드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삶의 소멸과 중단의 지점을 새로운 시작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규정하려는 시도를 주체의 자기 정립이라고 한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이러한 자기 정립은 시간의 흐름을 차단함으로써 가능하다. 자신이 누구인가, 무엇인가에 답한다는 것은 바로 개념으로 모든 유동적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이 변하더라도 변할 수 없는 것을 언어적 개념으로 고정시키려고 한다.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순간을 명사화한다는 뜻이다. (영어의 명사(noun)와 이름(name)은 모두 라틴어 nomen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시도가 가능한 것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유연성 덕분이다. 언어의 탄력은 다양한 의미를 만들 수 있는 애매성을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레비나스의 말, “현재는 정지이다” 혹은 “순간에 이름을 부여할 수 있고 순간을 명사로서 사유할 수 있다”(『존재에서 존재자로』(서동욱 역, p.122)는 말은, 인간이야말로 현재를 현재로서 만들 수 있는 주체라는 점을 철학적으로 강조하는 명제들이다. 즉 언어의 힘은 소실점을 재창조의 순간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찰나로 대변되는 현재의 철학적 의미다. 그는 덧없는 시간으로 파악되던 전통적인 서양적 시간 관념을 바꾸고자 한다. 순간은 인간 존재의 매몰 현장이 아닌 탁월한 현실화의 순간이다. 그래서 레비나스는 이렇게 말한다. “각각의 순간은 하나의 시작이며 탄생이다.”(앞의 책, p.127)    그는 순간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성을 모순과 역설로 보려고 한다. 다시 말해 소멸과 시작의 교차와 중첩이 순간의 특성이다. 가령, 처참한 죽음을 요구하는 나치의 가스실도 자기 존재의 절대성을 결코 훼손할 수 없다. 이는 자기 파멸도 수용하고 동시에 생존도 욕심낼 수 없다는 것을 냉혹하지만 인정할 수 있다는 태도다.
이렇게 자기를 정립하고 현실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몸과 의식과 무의식 모두를 지배하는 본성이다. 자기중심적 선악 판단이란 것이 어떤 구체적인 현실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몸과 마음, 의식과 무의식, 찰나와 지속 모든 것에 적용된다. 더 이상 ‘몰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조차 할 수 없게 한다. 찰나의 현실이든 꿈속의 착각이든 모든 순간은 자기 삶의 주인이 인간 자신이어야 한다는 욕망을 방증하고 있다. 
앞서 보았듯이 찰나에 대한 해명으로 인간 자신의 주체성을 확보하려는 레비나스의 시도는 공감이 많이 가는 몸부림이다. 하지만 이러한 바탕을 만들고자하는 그의 시도는 자신의 조상들이 외면했던 성육신하신 구속주이신 그리스도의 무궁한 은혜가 들어설 여지를 점점 사라지게 한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극한의 순간을 견뎠던 선배들을 떠올려 보게 된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

여자들은 자신들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았으며, 또 다른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을 얻으려고 굳이 풀려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였고 심지어는 결박과 투옥까지 당하였다. 그들은 돌로 맞았고 톱으로 켜지고 검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였다.
(히 12:35~38/ 바른 성경)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창조의 순간, 인간 무지에 대한 함구령
무의식, 자기중심의 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