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3-07-07 16:1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레비나스의 이타적 공동체, 그리스도 없는 세속주의!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니체 이후의 현대철학 〈73〉


레비나스는 유례없는 비극의 시대를 통감하면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가능성을 탐구한 철학자이다. 그에게 인간이란 영혼불멸의 성질이 깃들어있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만의 어떤 흔적이라도 남기려는 인간이지만, 그것은 (니체의 신의 죽음 이후 의지할 모든 것이 사라졌으므로) 현재로서는 창조의 압력과 책임감만 키울 뿐이다. 레비나스는 이러한 부담스러운 시대적 과제를 (죽음과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성을 재평가하여 가치창조와 의미부여의 기회로 보고자 한다.     
레비나스가 만난 인간이란 종교적 혹은 사상적 근거를 모두 상실하고 단지 “현재 속에서 고통받는 주체”(『존재에서 존재자로』, 서동욱 역, p.151 *이하 괄호 숫자는 쪽수)일 뿐이다. 자기 삶을 결코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는 고통의 메아리가 울부짖음처럼 들리던 시대의 산물이다. 레비나스는 이러한 비극적 정황을 인간 실존의 필요조건으로 재조명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죽음의 순간은 탄생과 부활의 순간도 교차된다는 것을 철저하게 ‘의식’할 수 있어야 한다. 고상한 죽음을 택한 순교자가 이러한 순간을 겪어가는 한 예가 된다. 순교자에게는 “모든 것이 상실된 순간 자체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156) 이러한 순교자는 자신이 불멸한다는 보상도 변증법적 진행으로 목적에 도달한다는 보상도 그리고 신과 같은 절대자가 돌본다는 보상도 원치 않는다. 무의미함으로 끝나버리는 인생의 한 순간을 생생하게 의식 속에 스스로 각인할 수 있는 주체 확립이 목적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행은 “순간 자체 속에서의 기적적인 출산”(157)의 사건에 비유된다.
하지만 비극에서 구제되는 일은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비극을 자신이 극복할 수 없다. “구원은 오로지 다른 곳에서만 올 수 있다.”(158) 여기서 말하는 다른 곳은 공동선을 지향하는 근원으로서 절대적 이타성이 지배하는 곳과 같다. 앞서 말한 주체의 자기 존립은 반드시 이러한 이타적 타자성에 의존해서만 의미가 있다. 
레비나스는 공동체적 사회성을 고려하지 않고 주체를 탐구했던 이전의 서양철학을 비판한다. “고전 철학은 스스로 부정할 수 있다는 데서가 아니라 타인의 이타성 자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용서하게 되는 데서 성립하는 자유를 외면하고 있었다.”(159) 즉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타인의 이타성을 과소평가한 것이 서양철학의 한계이며 과오였다는 것이다.
소멸과 죽음이라는 비극의 시간이 회복이나 부활과 교차하면서 인간 삶을 구성하도록 하는 이타적 타자성은 레비나스가 도달한 인간의 고유한 가능성이다. 인간 본래의 공동성(共同性)을 지향하는 공동체는 가난한 자, 과부 그리고 고아(출 22:21)가 그리고 이방인, 권력자 그리고 적도 함께 해야 한다. 레비나스는 전혀 이질적인 것들이 어우러져 형성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소망하고 있다.
그런데 레비나스는 타인과의 근접가능성을 ‘에로스’라고 한다. 에로스 신화는 풍요의 신과 빈곤의 인간을 연관시켜 주려는 의도가 있다.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인간과 신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에로스’라고 부른다. 인류는 보편적인 상호평준화의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불균형과 불평등, 차별과 배척의 방식으로, “상호주관적 관계의 비대칭성”(162)이 근본조건이다.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비대칭성과 이종적(異種的)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절대 타자인 ‘아버지의 매개’(162)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조상들의 신이었던 여호와의 필요성이 커진다. 이유는 우리가 원하는 이타적 공동체를 우리가 수립해야 하기 위한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근본 이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민심을 모으기 위해 애굽의 송아지 우상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이러한 발상에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은총이 들어설 틈은 그만큼 사라지게 된다. 
레비나스는 절대적 존재인 신의 죽음을 배경으로 인간 주체의 부활을 새로운 공동체를 설정하여 제시하려고 한다. 주체의 근거를 확립하는 단서를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타적 필연성에서 찾으려는 애타는 그의 시도에는 공감하지만, 이는 또한 바울 사도를 통해 엄히 경계한 세속주의의 한 전형일 뿐이다.

 8 아무도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지 못하도록 주의하여라. 이런 것들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초보적 원리들을 따른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다. 10 너희도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다. 그분은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이시다.(골 2:8,10/ 바른성경)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미디어(The Media) 시대: ‘신의 죽음’을 알리는 매체들!
창조의 순간, 인간 무지에 대한 함구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