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쉰다섯.중국 도교·불교와 네스토리우스교의 혼합, 당나라의 유사 기독교
중국 문명의 전성기라고 불리는 당나라(618년-907년)에 7세기 중엽(635년) 페르시아에서 네스토리우스교[예수 그리스도를 신성이 깃든 경건과 도덕의 표상으로서 인간으로 봄]가 전래된다. 이후 200년 이상 지속한 네스토리우스교를 중국인들은 ‘빛의 신앙’이라는 뜻에서 ‘경교(景敎)’라고 칭했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에 대해 관용 정책을 펼쳤던 당 태종은 유교 못지않은 도덕적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로 경교의 포교 활동을 허락하고 지원했다. 그리고 수도 장안을 비롯해 경교의 교회라고 할 수 있는 대진사(大秦寺)를 나라 곳곳에 건립하도록 공인한다. 특히 당 태종은 경교 경전의 중국어 번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후원을 했다. 경교 비문에 남아 있는 경교에 대한 당 태종의 교지(敎旨) 내용이다. “그 으뜸 되는 가르침을 보니 생성이 요체(要諦/핵심)가 세워져서 사(詞/말과 문체)에 번잡한 내용이 없고 이에 망전(忘筌/그물을 버림, 목적달성 후 수단을 버림)의 효용이 있다. 만물을 제도(濟度/강을 건너도록 도움)하고 인간에 이로우니 마땅히 천하에 행하도록 하라.”(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25074) 635년 당시 한반도는 신라 선덕여왕 2년, 고구려 영류왕 18년, 백제 무왕 36년에 해당한다. 백제와 고구려는 국운(國運)을 다해 가고 신라는 당나라를 통해 세력을 확장하고 있을 당시에 당나라 수도 장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성이 하나님이신 존재가 아니라 탁월한 도덕 교사로 보는 네스토리우스교가 정착하고 있었으며 이후 2백 년 이상 포교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통일신라시대는 모든 면에서 당나라와 밀접한 관계 속에 있었다. 통일신라시대에 당나라로 간 불교 유학생들은 경교를 접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956년 경주에서 출토한 신라시대 유물 중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석제(石製) 십자가, 동제(銅製) 십자가 그리고 마리아관음상 등은 당시 불교와 경교가 착종했음을 알리는 증거로 추측한다.
네스토리우스교는 중국 선교를 위해 도교(道交)를 활용했다. 현재 제국 도시 서안의 ‘기념비 숲’의 비석(781년 건립)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 비에 용과 십자가를 함께 새겼고, 도교의 핵심 개념으로 우주적 근본 원리인 ‘도(道)’를 창조주와 관련짓고, 삼위 하나님, 분리된 그리스도의 본성 등을 새기고 있다. 도교를 사용해 신성에서 분리된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는가 하면 성선설을 통해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교리를 전파한다. 그런가 하면 불교 경전(수트라, sutra)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기독교와 불교의 혼합 경전을 만들며 포교한다. 그 책 이름이 ‘예수 메시야 경(Jesus Messiah Sutra)’이다. 그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자. “모든 부처도 하늘의 주님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하늘의 주님을 볼 수는 없다. … 모든 부처는 바로 이 바람[성령-필자 주]에 의해서 흐리고 변화한다. 이 세상에는 바람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420) 불교의 교리도 성령의 영감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그런가 하면 성선설에 기초한 만인구원론의 문을 열어 서양에 의한 중국 선교 최초 종교다원주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미 믿음을 가진 여러분이나, 모든 종류의 공덕의 행위를 하는 여러분이나, 정직한 마음으로 자신의 길을 가는 이들은 모두 하늘에 들어갈 것이며 영원히 그 행복의 집에 남을 것이다.”(420-21)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도교도 불교도 유교라도 상관없다. 이로써 보건대 중국의 경교 신봉자들의 관심은 성경 진리에는 관심이 없는 유사 기독교 종파였다. 그들은 교세 확장을 위해 중국인들의 사회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빨리 정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의 보호가 필요했으며 왕의 호의를 얻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이러한 과정은 바로 기독교 진리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길로 향하게 했다.
모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소리, 모든 사람들이 반길만한 소식이 기독교의 복음은 아니다. 중세기 초엽에 중국에 전해진 기독교는 비성경적인 요소가 너무 많다. 이들의 역사는 성경 진리에 토대를 두지 않는 기독교는 어떻게 변질되어 다른 민족과 국가에게도 전해지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7-9세기의 중국 경교가 이 한반도에 정착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 전 하나님이 이 땅에 성경권위에 토대를 둔 바른 기독교를 세우기 위한 준비를 하셨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 당시로부터 대략 일천 년이 흐르면서 중국과 한반도에 성경의 절대권위가 통치하는 진리 전파의 역사가 일어난다. 지금부터 30여 년 전 1992년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한국 교회를 통한 중국 선교, 특히 살았고 운동력 있는 생명의 말씀, 성경의 절대 진리가 중국 교회에 전해진 것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천년도 넘는 기간 동안 여호와 하나님이 준비하신 때가 성취된 참으로 놀라운 은총의 역사다. 한국 교회는 무분별하고 혼탁한 교세 확장이 아니라 성경권위에 바탕을 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일에 몰두하길 간절히 기도한다. 기독교의 진리는, 네스토리우스교가 벌였듯이, 만인에게 타종교의 교리와 혼동되는 종교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는 자는 전할수록 자신이 전하는 내용이 성경 진리에 토대를 두고 있는지 조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 때문이며, 그가 비진리가 지배하는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선별 받았다는 은총은 바로 바르고 정확한 진리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1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2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살후 3:1-3)
<248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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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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