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경험 구조에 나타난 자기 오만과 착각
현대 사회는 ‘신의 죽음’이라는 말이 더 이상 생소하게 들리지 않는 시대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와 관련지어 보면 신의 죽음은 절대 가치의 완전 붕괴를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사회는 절대 가치가 사라진 시대이며, 이제는 아무리 그럴듯한 신(특히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해도 그 신의 절대적 권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신은 그 자체 절대적 가치로 존재해야 한다. 다른 여지가 있다면 더 이상 신이라고 할 수 없다. 아니면 그때마다 필요한 대로 써먹는 잡신(雜神)일 것이다. 인간이 달래기도 하고 구슬려 삶을 수도 있는 이기적이고 사악하며 비열하고도 우둔한 잡살뱅이 잡귀(雜鬼)일 게다. 문제의 심각함은 이러한 잡귀와 여호와 하나님의 차이가 사라지는 데 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 잡신류로 전락하도록 한 이유가 뭘까? 그렇게 생각해도 좋은 납득 가능한 이유를 어디에서 제공한 것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중요한 원인 제공자가 하이데거이며 또한 칸트다. 니체는 ‘신의 죽음이 온 세계에 보편화될 것이다’는 예고를 했다. 이 말은 결국 기독교의 하나님이 온갖 무속적 신의 잡류에 불과하다는 말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니체의 예고를 따라 하이데거가 합류하고 있으며, 하이데거는 이미 자신보다 한 세기 반 전에, 부족하나마, 칸트가 중요한 시도를 했다고 본다.
서양 철학은 인간중심적 지식들과 그 체계다. 다시 말해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전적으로 배제해야만 가능한 지식들이다. 나아가 배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자존성과 성경 계시(啓示)의 절대 권위를 철학적 이성의 체계 안으로 흡수함으로써 최종적 권위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후자의 노력가운데 현대 철학에서 큰 영향을 미친 자가 하이데거다.
하이데거는 논리학 후반부에 칸트의 중요성과 한계를 지적한다. 목적은 인간의 지적 능력과 사유(思惟)의 심오함과 위대함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것처럼) 칸트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을 ‘순수 직관’ 과 ‘순수 지성’이라고 말한다. 순수(純粹)라는 말은 감각적 경험에 영향을 받지 않고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순수 직관이란 경험을 하기 전에 경험할 수 있는 조건이 인간에게 이미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 순수 직관이 공간과 시간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간과 공간은 오감(五感)을 통해 경험을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의식 속에 이미 마련되어 있는 고유한 능력이다. 예를 들어 ‘영원한 천국’이니 ‘영원한 생명’이라는 개념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공간과 시간의 이해와 활용력을 (경험 이전에) 선험적(先驗的)으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저급한 천국이든 고급의 천국이든 모두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순수 직관의 능력이 실제로 반영된 것이다. 한마디로 순수 직관이란 모든 경험들을 가능케 하는 원천으로서,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소유한 능력이다.
사실 이러한 인간 능력을 철학적으로 증명하려던 자는 칸트(1724~1804)보다 한 세기 훨씬 전 데카르트(1596~1650)였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고 하는 그의 명제는 경험 이전에 이미 갖추어져 있는 인간의 본래적 능력을 증명하려고 한 시도다. 하이데거는 이른바 그리스에서 데카르트와 칸트로 흘러가는 현대의 서양 사상의 흐름이 결국 인간의 본래적 능력을 사유와 의식에서 되찾으려는 시도와 과정이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그 근원이 철저하게 신 중심지인 유대에서 비롯한 여호와 하나님은 큰 장애물임에 틀림없다.
오히려 하이데거는 칸트의 시도를 발전시켜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믿었던 여호와 하나님도 은총(恩寵)과 계시(啓示)의 복음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와 지성의 결과물로 분류하고자 한다. 그래서 기독교만의 영원자존하신 여호와 하나님, 기독교인만의 고유한 인식 능력을 철저하게 분쇄하려고 한다. 나아가 인간의 사유와 그 구조에는 본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 담겨있다는 필연성을 증명하고자 한다. 하이데거가 경험 이전의 이러한 초월적 능력을 증명하려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원자존성이나 계시 혹은 예정과 같은 성경의 고유한 개념들이 인간 지성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칸트의 다음 말을 인용한다. 수많은 인간 경험의 ‘모든 결합은 지성의 행동이다.’
다양한 생각을 종합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는 깊이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오만을 보며 다시 한번 옛 신앙인의 진지한 고뇌를 깊이 되새겨 본다.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한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시94:19)
<다음 호에는 ‘하이데거: 서양철학 전체에 내려진 저주’를 다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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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하이데거 : 철학적 착각의 종결 |
감성(感性) 작용과 창조자 본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