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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작성일 : 11-10-03 09:4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철학의 종말’로서 분석철학


분석철학(分析哲學, analytical philosophy)은 언어 분석과 기호의 논리적 활용이 철학적 사유에 필수불가결하다고 믿는 학파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분석철학은 특정한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토대로 이념 체계를 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이념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판단(명제)에 대해 분석과 해체를 시도한다.

  현대 분석철학은 20세기 초 수학자이며 논리학자 그리고 철학자였던 독일의 프레게(Friedrich Ludwig Gottlob Frege, 1848~1925)와 영국의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1970)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했다. 이들은 모든 철학적 문제를 언어 분석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우선 언어의 명료화를 위해 수학적 명제를 논리적으로 기호화했다. 프레게는 이러한 기호논리학이 단순히 수학적 언어의 명료화를 위한 도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과학적 사고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언어 분석철학은 언어 구조에 대한 형식논리적 분석을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유 방법이자 전략으로 삼는다.

  분석철학의 발전은 오스트리아 빈의 수학자들과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빈 학파(비엔나 써클)’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18세기 영국 철학자 흄(David Hume, 1711~1776)의 철학적 정신을 이어 실증적(과학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형이상학을 배격하고 ‘내용은 경험적이며 형식은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이들은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의 󰡔논리철학논고󰡕를 ‘성경’처럼 받아들였다. 제2차세계대전 후 영미 대학을 중심으로 분석철학은 대학 강단을 지배하면서 주류 철학이 된다.

  분석철학과 비트겐슈타인은 떨어질 수 없는 이름들이다. 유태인의 피가 흐르는 비트겐슈타인은 맨체스터 공대생으로 시작해 케임브리지의 스승 러셀을 놀라게 하고 그곳을 떠나 한 때 빈 근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다시 케임브리지 대학 철학교수로 잠시 재직한다. 병원의 짐꾼으로 수도원 정원사로 보냈는가 하면 엄청난 유산을 자선사업에 희사했고 동성애적 기질로 평생 독신으로 기묘하게 살았던 인물이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철학은 지각(知覺) 대상에 대한 언어 분석을 통해 그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형이상학이나 종교적 개념들(신, 절대정신, 道 등)은 진위를 판별할 수 없기 때문에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초월적 배후의 진리를 부정하고 참인 명제가 무엇인지를 밝혀보려는 그의 시도는 󰡔논리철학 논고󰡕(1921)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의 핵심은 ‘언어그림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그림이론에 따르면 경험 가능한 사실을 반영하는 궁극적인 ‘원자(原子) 언어’가 존재한다. 문장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원자 언어는 어떤 사실의 직접적 반영물이다. 그림이론에서 문장의 구조와 사실의 구조는 동일하다. 이 말은 경험 가능한 사실의 구조를 담지 않는 문장은 넌센스라는 말도 된다. 그는 원자 언어만 분명하게 밝히면 철학은 더 이상 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철학은 이제 거대한 이야기(신, 영혼불멸, 최고선 등)를 만들어 세상을 규정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삶에 유용한 의미 분석이 철학의 전부이며 이 세상 전체의 틀을 바꾸겠다는 태도는 오만이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철학은 궁극적 존재를 결정하는 제왕적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각종 지식과 관련된 언어에 대한 이차적 작업이 철학이다.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언어의 의미를 정확히 규정하는 일 외에 어떤 철학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철학은 곧 언어철학이다. 그를 구심점으로 하는 언어분석철학은 이제까지 혼란스러웠던 언어를 정돈함으로써 더 이상 철학자가 필요 없는 ‘철학의 종말’을 추구했다. 그런데 과연 문제가 있었던 판단만 선별하면 궁극적 존재에 관한 물음은 모두 해소되는가? 또한 경험 세계를 초월한 가치에 대한 물음도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가? 오히려 그 반대는 아닌가?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를 보여줌으로써 진리에 대한 더 큰 과제와 다급한 요구를 남겨놓는다.
<다음 호에는 ‘일상언어 분석과 언어게임의 오락실’을 다루고자 합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하나님의 죽음에서 ‘성경의 죽음’으로
하이데거 : 철학적 착각의 종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