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신의 무덤과 쥐새끼 판
현대 예술철학자 아써 단토(Arthur Danto, 1924~)는 “방향의 부재가 새시대의 특징적인 징표”라고 한다. 시작도 목표도 없는 시대가 현대다. 신의 죽음으로 대변되는 허무주의 시대에는 어떤 가치도 고정할 수 없다. 예술 분야(아방가르드, 다다이즘 등)가 이러한 정황을 적나라하게 대변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젊은 행위예술가 김미루 씨가 알몸으로 돼지랑 우리에서 104시간을 같이 생활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개념으로 무장된 철학자인 아버지도 놀라고 가슴 아파할 만큼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돼지와도 소통하며 나흘을 넘게 살아가는데 한순간도 소통하지 않으려는 돼지만도 못한 것들이 판치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퍼포먼스 아트로 고발한 듯도 하다. 이전의 것을 배격한다는 점을 모토(motto)로 하는 전위예술(前衛藝術)은 언제나 혁신적이고 늘 실험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실험의 대상에서 삼가야 할 것은 도무지 없다. 하나님과 같은 절대적 가치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된다. 앞서 소개한 단토가 말하는 ‘예술의 종말’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대변한다.
‘신의 죽음’에서 ‘철학의 종언’으로 이제는 ‘예술의 종말’로 이어지는 현대 의 가치체계는 사상과 가치 추구의 시도가 스스로 무덤을 파야하는 시도 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느끼게 한다. 어떤 미래학자의 말대로 개척해야 할 신세계를 향한 ‘제4의 물결’이 일어난다고 하나, 정신구조나 감정 표현의 틀을 볼 때 5억 1천 평방미터의 지구는 허섭스레기 더미로 쌓이거나 묻힐 것이다. 참여와 연대 그리고 통섭(統攝)의 시대를 꿈꾸고 있으나 겉보기와는 달리 억지의 조합이며 무자비한 억압 체계(푸코)가 견고해 질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기대할 수 있는 궁극적 목표와 판단의 기준은 이미 한 세기 전에 파괴되어 이제는 그 잔해들만 굴러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잔해를 모아 그럴듯한 형상을 만들어 그것이라도 위안으로 삼을 수 있을까. 아니 나쁜 속임수가 될 뿐이다.
저항과 해체, 단절과 붕괴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예술의 구호 앞에 맞설 수 있는 대항마란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현대 예술은 이제까지 인간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모든 것들을 폭파시키는 ‘다이너마이트’(니체는 절대가치를 전복하기 위한 자신의 시도를 다이너마이트라고 했음)이기 때문이다.
전통을 반대하고 해체를 주장하는 다다이즘의 원조인 발(Hugo Ball, 1886~1924)은 그 예술의 주요 적들이 ‘종교, 과학, 도덕’이라고 한다. 교회는 공중누각이었다고 비판하고 도덕적 세계관으로는 더 이상 미래를 만들 수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가치들을 빠른 시간 내에 폭파시키는 전문가들의 삶을 그는 “미친 세상과 벌이는 전투”라고 한다. 다다이즘은 서구 문명의 야만성과 광기를 드러낸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분노와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 반문명과 반전통을 대변하는 예술 운동으로 절대가치에 대한 저항 수단과 해체 운동이 되었다.
사실 니체는 절대 가치가 무너진 시대 즉 허무주의 시대에서 삶을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예술가’를 추천한 바 있다. 그들의 창조성이야말로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체로부터 100여 년을 훨씬 지난 오늘, 온몸을 던지는 예술가의 행위에서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여지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알몸으로 돼지와 살갗을 뱌비대며 잠시 돼지의 종족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극복의 여지를 찾기란 힘들다. 마냥 가슴 아프기만 할 뿐 그 예술가의 아버지의 말처럼 뿌듯하지는 않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탈출구를 찾으려는 예술가의 지쳐 혼절한 몸둥이마저 갉아 처먹으려 달려드는 ‘쥐새끼들’이 판치는 현실이 더 가슴 아플 뿐이다.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마 27: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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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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