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3-02-28 21:1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도와 덕과 인과 예


子曰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
자왈 지어도 거어덕 의어인 유어예

『논어』 「술이」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말했다. “도에 뜻을 두며, 덕을 굳게 지키고, 인에 의지하며 예에(서) 노닐어야 한다.”

‘지(志)’는 ‘마음이 가는 바(心之所之, 심지소지)’이다. 도는 인륜과 일용의 생활 사이에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서 마음이 반드시 그 가야 할 곳 곧 도에 맞게 되면 그 가는 것이 올바르기에 다른 곁길로 향하는 미혹됨이 없게 된다. ‘거(據)’는 ‘굳게 잡아 지킨다(執守, 집수)’는 뜻이다. 덕은 도를 실천할 때 마음에 쌓이는 것이다. 마음에 도를 얻어 지키면서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시종일관 한결같아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효과(공효)가 있게 된다. ‘의(依)’는 단순히 의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떠나지 않음(不違之)’(또는 어긋나지 않음)을 말한다. 인은 사사로운 욕심이 완전히 제거되어서 마음의 덕이 온전한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군자는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의 사적인 마음이 없이 언제나 인(사랑) 안에서 해나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유(游)’는 상황을 즐거이 관망하면서 모든 실정을 알맞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예는 예악의 글과 사·어·서·수의 법이다(藝則禮樂之文 射御書數之法, 예즉예악지문 사어서주지법). 예에는 모두 지극한 이치가 도사리고 있어서 일용의 생활 속에서 빠트릴 수 없다. 아침저녁으로 이러한 예들 속에서 노닐면서 그것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 일상생활을 할 때 그것이 군자의 생활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먼저는 도에 뜻을 두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함을 일차적으로 강조한다. 동시에 도를 추구하는 삶은 반드시 덕을 쌓는 것과 병행되어야 한다. 도를 따르며 덕을 실천하는 인생살이는 그 과정 자체 안에 인 내지 사랑을 떠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천리가 행해질 수 있다. 모든 인생들의 하루살이는 우선적으로 노니는 것이어야 한다. 그 노닒이 예와 도덕, 모든 사회적 규칙을 따르는 것이어야 하고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직업과 사회생활의 일체의 규범 안에 있어야 한다. 노니는 인생살이 자체가 도와 덕과 인을 따라 사는 삶일 때 전개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노니는 인생살이는 공자가 스스로 주장한 ‘종심소욕이불유구(從心所欲而不踰矩, (자기) 마음이 원하는 것을 좇을지라도 규범을 어기지 않음)’의 삶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삶을 오늘날의 용어로 말해 본다면 아마도 도와 덕과 인의 삶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어 보인다.
많은 무리의 선구자가 되어 이끌어가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 뜻을 세상의 바른 도를 세우고 실천하는 데 두어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가 붙잡아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이 감동하고 따르고자 해야 하는 도리다. 그가 믿고 의지해야 할 것은 다른 이들에게 인 또는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선구자가 노닐어야 할 것은 마땅히 예, 곧 사회의 법과 관례이며 모든 이들이 직업전선과 일상생활 전선에서 지켜야 할 규례들이다. 그리고 그 일체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켜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주고 있는 외침은 무엇인가. 하나는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도에 진정한 뜻을 두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리스도의 도가 아니면 어디에 그들의 뜻을 두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리스도의 도는 그의 겸손과 인내, 헌신과 죽음, 끝이 없고 한결같은 하나님 사랑과 제자 사랑 등이다.
둘째로 신령한 덕을 붙잡으라는 것이리라. 그리스도인이 교활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이웃의 것을 탐하는 것은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덕은 나의 것을 내어 타인을 위해 베푸는 것이다. 덕은 서로를 세워주는 데 있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 자신이 실천했던 베풂의 덕을 배우고 따르고자 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리스도인의 자기 실존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지하며 그 사랑을 펼치는 데서 확인되어야 한다. 매사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중심으로 그것과 떨어지거나 멀어지지 않도록 행동하려 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헌신과 인내, 끝까지 사랑하심, 자기를 내어주심,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등등의 생활을 자연스럽고 평화롭고 유연하게 펼쳐가게 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이 노니는 삶으로 변해 갈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도와 덕과 사랑 안에서 유연하게 노니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즐거운 인생으로 장식되어야 한다. 또 하나의 조건이 있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유연한 즐거움을 넘어 성화의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그리스 비극 정신을 논리적 추론으로 압살한 소크라테스
마흔아홉. 성경권위 부재(不在)와 황제의 교회 통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