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배움을 사랑한 사람, 안회
哀公問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有顔回者 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애공문제자숙위호학 공자대왈유안히자 호학 불천노 불이과 불행단명사의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금야즉무 미문호학자야.
『논어』, 「옹야」장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애공이 물었다. “제자 중에 누가 배움(배우는 것)을 사랑(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안회(라는 사람)가 배움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화를 남에게 옮기지 않았고,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는데,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서, 지금은 없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배움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듣지 못했습니다.”
애공( ? ~ B.C. 467)은 노나라의 제27대 후다. 공자의 말년에 노나라의 후가 되었다. 공자는 그에게 제나라를 침공할 것을 여러 차례 권하였다. 하지만 애공은 공자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아마도 애공은 정치적 술수가 있어 보이는 사람 같다. 그가 어느 날 공자에게 배우기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물었다.
공자는 안회(B.C. 521~B.C. 481)를 배움을 사랑한 사람으로 추천하였다. 안회가 배움을 사랑한 근거는 그가 자신의 화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았다는 것과 무슨 잘못이든 한 번 저지른 후에 그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안회는 불행하게도 단명을 했다. 누구라도 배우기를 사랑하여 책을 읽거나 배운 것을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고자 하면 몸과 마음이 소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을 읽는 자체가 상당한 체력적 소모와 정신적 소모를 필요로 한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칼로리를 섭취해야 한다. 하지만 안회는 가난했고 아버지도 봉양해야 했다. 그에게는 이래저래 영양을 섭취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배우기를 사랑했다.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 한 그릇의 밥과 한 사발의 물)”으로 식사를 때우면서 누추한 거리에서 살았다. 이러한 문제를 보통 사람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안회는 배움을 사랑하는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다. 공자는 이러한 안회를 정말로 현명하다고 칭찬하였다(옹야, 11편).
12세기의 성리학자 중 한 사람인 정자(程子)는 안회가 화를 낸 것조차도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외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굳이 화낼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판단했다. 선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안회 자신이 스스로 모두 알기에 다시 그 잘못을 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하였다. 정자도 안회의 ‘불천노 불이과’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안회의 불천노 불이과의 문제는 유자들에게는 중요한 덕목이다. 이 덕목을 실천한 자는 유학사상을 실천한 자라 하여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자의 유학은 인과 예를 근본으로 한다. 이것을 주장한 자는 공자 자신이다. 그렇다면 이 인과 예의 실천자는 당연히 공자 자신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공자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인과 예를 실천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만일에 불천노 불이과를 인과 예의 실천의 핵심으로 간주한다면 공자는 이것을 자신이 실천했다고 하는 대신에 이미 죽어서 세상에 없는 제자 안회를 통하여 그가 한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즉 유학사상의 핵심을 직접 완전하게 성취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이 공자의 한계이자 유학의 한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다르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5; 벧전 1:16)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교는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시며 진실하시며 스스로 모든 일을 그렇게 이루시는 분이심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 그리스도가 친히 거룩하시고 진실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율법에서 금하는 죄를 계속해서 반복하여 범하는 것은 수치가 된다. 그리스도인이 늘 같은 죄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죄를 남에게 옮겨서도 안 되고 반복적으로 저질러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어떤 죄도 용서받고 자녀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도 안 된다. 성령을 거스른 죄 외에는 어떤 죄도 다 용서되기 때문이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게 모든 율법을 이루셨기에 이제 우리도 이를 본받아 악한 생각이나 행동들을 반복적으로 범하지 말자. 우리의 화를 가족이나 이웃에 옮기지도 말자. 대신에 가난하든 힘들든 말씀을 배우고 익히며 실천하기를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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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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