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부자를 도와 부하게 하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
子華使於齊 冉子爲其母請粟 子曰與之釜 請益 曰與之庾 冉子與之粟五秉
자화시어제 염자위기모청속 자왈여지부 청익 왈여지유 염주여지속오병
子曰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 不繼富
자왈적지적제야 승비마 의경구 오문지야 군자주급 불계부.
『논어』, 6장 「옹야」장의 계속이다.
자화가 제나라로 심부름을 가게 되자 염자가 (공자에게) 그의 어머니를 위해 곡식을 줄 것을 요청하였다. 공자가 대답하였다. “부(6두 4승의 무게)를 주어라.” (염자가) 더 줄 것을 (요)청하였다. 공자가 말하길 “유(16두)를 주어라.” 염자는 (그보다 훨씬 많이) 5병(16섬)을 주었다.
공자가 말했다. “적(자화)이 제나라에 갈 때에 살진 말을 타고 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 내가 들으니 군자는 급한 사람(가난한 자)을 돌보아 주고 부를 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자화(이름은 赤)와 염자는 모두 공자의 제자들이다. 자화의 이름은 공서적(公西赤)이다. 사(使)는 사신으로 가는 경우가 아니면 ‘시’(심부름으)로 읽어야 한다. 자화(적)가 어느 날 공자를 위해 제나라 심부름을 가게 되었다. 염자는 그때에 공자의 무리 중에서 회계를 담당했던 것 같다. 그는 자화가 스승 공자를 위해서 수고하니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화의 어머니에게 곡식을 주자고 하였다.
염자의 말을 듣고 공자는 부(釜)를 주라고 하였다. 염자는 이를 적다고 보고 공자에게 더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공자는 유(庾)를 주라고 하였다. 하지만 염자는 임의로 자화(적)에게 오병을 주었다. 이것은 공자가 처음에 말한 양의 거의 3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공자가 자화에게 부를 주라고 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자화가 제나라로 심부름을 갈 때에 살진 말을 타고 갔고 가벼운 짐승의 가죽으로 지은 옷을 입었다. 그 당시 살진 말을 탄다거나 가벼운 가죽옷을 입는다는 것은 부호가 아니면 힘든 일이었다. 자화가 부유한 집안의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염자는 자의적으로 자화에게 많은 양의 곡식을 제공한 것이었다.
공자는 이를 경계하여 군자는 급(急)한 사람, 곧 궁핍한 사람들 돌보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군자라면 결코 부유한 사람에게 많은 재물을 주어서 더 부자가 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공자는 바로 다음에 원사(原思)라는 제자의 처신을 통하여 염자를 간접적으로 교훈하고 있다. 원사가 공자의 가신이 되어 집안을 관리하고 있었다. 공자는 그에게 곡식 9백을 주었다. 하지만 원사는 이를 사양하였다. 그러자 공자는 원사에게 이것을 사양하지 말고 그것을 받아서 이웃이나 향당 등에 나누어주라고 하였다. 정당한 것을 받아서 정당하게 사용하라는 뜻이었다.
공자가 제자인 자화에게 심부름을 맡아 달라고 부탁한 일이나 자화가 스승의 심부름을 맡아 제나라로 간 것은 모두 의에 맞는 일이다. 하지만 염자가 임의로 처리하여 부자인 자화에게 많은 곡식을 준 것은 군자의 도를 최우선으로 하는 공자 집단 내에서 사제 사이의 의리와 붕우 사이에서의 의의 관계를 훼손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이 염자의 처신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 역시 세상의 재물이나 재능 등을 가지고 임의대로 처리해서 사람 사이의 의를 망가트리는 것이 아니라 의를 세우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어떤 청지기에 대한 증언이 그 좋은 예다. 한 청지기가 주인이 맡겨 준 재물을 허비하고 있었다(눅 16:1~18). 주인이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그 청지기는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청지기는 다른 일을 하자니 부끄럽기도 하고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어서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청지기가 자기 주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 그 빚을 삭감해 준 것이다. 이렇게 하면 탕감받은 사람들이 자신이 해고되었을 때 자신을 도와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주인이 보기에 그의 행위는 가난한 자들에게 마음의 위로가 되는 것이었고 서로에게 사랑과 화목을 가져오는 행위였다. 그래서 주인은 이 청지기를 칭찬하였다.
청지기는 모든 인생들의 대표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관리하는 존재다. 그런데 인생들은 대부분 자신의 욕심에 의해 이러한 재능이나 재물을 함부로 허비한다. 주인이신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를 세우는 대신에 파괴하고 이웃과 서로 사랑하는 대신에 증오한다.
선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다툼은 권면을 통한 서로의 사랑을 돈독히 하고 평온의 관계를 세우는 것이어야 하고, 재물의 사용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이 부자와 권력자, 명성가 등을 더욱 부하게 해 주어서는 안 된다. 대신에 가난한 자나 미력한 자, 배우지 못한 자, 장애인 등을 돕는 일에 열심이어야 한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우리가 불의한 세상에서 불의하게 살아가는 자들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과 우애와 동정을 나누고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데 앞장서서 살아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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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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