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그리스 비극 몰락의 원흉(元兇): 소크라테스
디오니소스는 이미 비극 무대에서 쫓겨났고, 그것도 에우리피데스를 통해 말하는 악마적 힘에 의해 축출되었다. 하지만 에우리피데스 역시 어떤 점에서는 가면에 불과하다. 그를 통해 말하는 신은 디오니소스가 아니며, 아폴론도 아니다. 그것은 새로 탄생한 마신(魔神), 소크라테스라 불리는 마신이었다. 이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소크라테스적인 것의 새로운 대립을 의미한다. 그리스 비극의 예술 작품은 이 대립으로 인해 멸망했다.*
니체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Euripides, 기원전 약 480-406)는 진정한 비극 시인이 아니다. 에우리피데스는 인간과 인생의 바탕인 비극을 왜곡한 타락한 예술가다. 비극을 노래하고 있지만 작품 속에서 오히려 비극 예술의 대명사인 디오니소스 잡신을 추방한다. 그렇다고 모든 그리스 예술의 화신을 대표하는 아폴로를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니체에 의하면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비극이라는 운명 곧 삶을 지배하는 모순과 갈등, 대립과 투쟁을 본질로 삼지 않는 것은 예술의 자격이 없다. 그래서 니체에게 디오니소스 잡신 신화는 예술의 원동력이자 삶의 근본 요소를 지배해야만 한다. 그리고 아폴론 잡신 신화는 인간의 비극을 바탕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그 비극을 표현하고 극복하고 승화시키려고 예술 작품을 만드는 예술 작품 조형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에우리피데스는 디오스소스 잡신 신화와 아폴론 잡신 신화를 모두 망쳐 놓았다. 고대 그리스인의 삶에 대한 근본 통찰을 에우리피데스가 짓밟아 버린 것이다. 에우리피데스는 비극을 재현하면서 그 비극을 합리적 지성으로 파악하고 통제해 보려는 몹쓸 짓을 했다. 나아가 비극의 원천까지 손보고 그리스 예술을 근본에서 다시 구성하려는 과도한 욕심을 부린 타락한 예술가다.
그런데 에우리피데스는 자기 힘으로 비극 예술을 타락시킨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과 동시대인이었던 비극 예술의 천재적 파괴자 소크라테스의 행동대장에 불과했다. 그래서 니체는 에우리피데스를 단지 ‘가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예술의 원천인 비극을 파멸로 몰아 재앙을 야기한 자는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소크라테스의 등장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이미 정해진 답을 놓고 선택을 강요하는 운명적 사건이었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소크라테스적인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강요받았다. 이 질문은 고대 그리스 비극적 세계관으로 볼 때 그 자체 문제가 있다. 가령 디오스소스 잡신 신화와 아폴로 잡신 신화는 이원론적 대립이 아니다. 니체에 의하면, 두 예술 원리는 상호보완적이며 상호침투적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짜놓은 이성 중심의 낙관적 지성론(삶의 비극을 극복하고 인간 지성이 만족하는 도덕적 삶이 보편화할 것으로 믿는 태도)의 틀에서 보면 디오스소스가 ‘진리’이면, 아폴론은 ‘비진리’가 된다. 둘의 연합 가능성은 점점 사라진다. 그래서 모순과 대립, 갈등과 투쟁의 화신인 디오니소스 잡신 신화를 지적으로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규정해보려는 시도 자체가 기름에 물을 섞어보려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바보짓이다.
이것도 모른 채 에우리피데스는 단지 비극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심으로 인해 지성의 현란함을 통해 고대 그리스 비극 예술을 왜곡하고 결국 사장(死藏)시켜 버렸다. 하지만 비극 예술을 병들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극을 극복했다고 속이는 소크라테스의 감옥에 갇힌 에우리피데스는 “자기 덕분에 이제 백성들이 예술적 안목으로 그리고 빈틈없는 소피스트 논법으로 관찰하고 변론하고 추론하는 법을 배웠다”(91)고 거만을 떤다. 인간 본성에 대한 왜곡과 비극 예술의 가치를 시민의 천박한 상식 속에 매몰시킨 에우리피데스는 자신 덕분에 시민들이 수준 높은 철학자가 되었다고 바보 같은 너스레를 떤다. 니체는 에우리피데스의 천박성을 이렇게 지적한다. “이제 대중 전체가 철학을 하고, 전에 없던 영리함으로 나라와 재산을 다스리고 재판을 진행한다면, 이 모든 것은 자신[에우리피데스-필자 주]의 공적이고 그[에우리피데스-필자 주]가 국민에게 심어준 지혜의 성과라는 것이다.”(91)
고대 그리스 비극은 에우리피데스를 앞세워 시민들의 지성을 속이고 예술적 본능을 왜곡하도록 치밀하게 계획한 소크라테스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렇게 바젤의 젊은 고전학 교수 니체는 고대 그리스 연구에서 서양의 근본 사상을 지배하는 비극 예술을 파탄에 이르게 한 소크라테스의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의 전말을 폭로하고 기소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기소장에 니체는 이렇게 적시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고대의 비극을 이해하지 못했고 (……) 에우리피데스는 그와 동맹해서 새로운 예술 창조의 선구자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고대의 비극이 몰락했다면, 미학적 소크라테스주의는 살인 원칙이 되는 셈이다.”(103) 그리고 비극을 죽음으로 몰아간 소크라테스의 지성 중심의 낙관적 예술관은 또 다른 한 청년을 병들게 했다. 바로 플라톤이다. 니체의 공소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죽음에 임한 소크라테스는 고귀한 그리스 청년들에게는 새로운,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이상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 청년의 전형인 플라톤이 자신의 몽상가적 영혼을 열렬히 헌신하면서 이 이상적 모습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108. 강조는 원문에 의함) 이로써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 이어지면서 고대 그리스 비극은 그들에게 현혹당한 시민들에 의해 그야말로 비극적 종말을 맞았다. 니체의 한탄이 이렇게 이어진다. 소크라테스에 의해 “비극 속으로 한번 침투한 낙천주의적 요소는 비극의 디오니소스 영토를 서서히 잠식하고 결국 그것을 자기 파멸로, 즉 시민극으로의 투신자살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111)
고대 그리스 비극 예술의 종말을 안타까워하며 다시 이 비극을 당대 게르만 문화를 통해 부활시키고자 했던 니체의 기획 속에는 항상 자신이 경험한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이 자리 잡고 있다. 소크라테스를 비극 예술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이유도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기독교를 지배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도덕적 지성주의가 비극 예술을 ‘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기독교가 받아들이고 다시 이러한 기독교를 니체가 파괴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더 따라가 보고자 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1; 53:1)
* Friedrich Nietzsche, 『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니체전집 2(KGW III 1), 이진우 옮김, 책세상, 2005, 97-98. 이하 쪽수는 괄호 처리. 강조는 원문에 의함.
<237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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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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