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공자의 인물관 (1)
子謂 公冶長 可妻也 雖在縷絏之中 非其罪也 以其子 妻之
자위 공야장 가처야 수재루설지중 비기죄야 이기자 처지.
子謂 南容 邦有道 不廢 邦無道 免於刑戮 以其兄之子 妻之
자위 남용 방유도 불폐 방무도 면어형륙 이기형지자 처지.
子謂 子賤 君子哉 若人 魯無君子者 斯焉取斯
자위 자천 군자재 약인 노무군자자 사언취사.
『논어』 5장 「공야장」이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공야장에 대해 말했다. (그는) 아내를 얻을 만하다. 비록 그가 포승줄에 묶여 있었지만 그의 잘못은 아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공자가 남용에 대해 말했다. (그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폐해지지 않을 사람이고 나라가 잘못 다스려질 때라도 형벌이나 죽음을 면할 것이다. (그리고는) 형님의 딸을 (남용에게) 시집보냈다.”
공야장은 공자의 제자다. ‘루’(縷)는 검은 끈이고 ‘설’(絏)은 묶는 것이다. 옛날에는 죄수를 검은색 포승으로 묶어 옥에 가두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공야장은 감옥에 갇혔었다. 그런데도 공자는 그것이 공야장의 잘못이 아니라고 확신하였다. 공자가 공야장에 대해 뭔가 확실한 인간다움을 믿고 있었다는 말이다. 상대방의 죄가 있고 없고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달려 있다. 공자는 자신의 판단으로 공야장을 옳은 사람으로 신뢰한 것이었다. 스승으로서 공자가 공야장에 대해 보인 신뢰의 수준은 자신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낼 정도였다.
공자는 남용에 대하여 그 사람이 나라가 바르게 통치되기만 한다면 반드시 등용될 인물이라고 믿었다. 혹시 변고 등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나라가 무법의 세상으로 바뀐다 하더라도 남용은 자신의 허물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 않을 만큼 진실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남용은 논어 11장 「선진」(先進)에서 다시 언급되고 있다. 그 내용은 남용이 하루에 세 번씩 ‘백규’(白圭)라는 시를 외웠다는 것이다. 백규는 『시경』의 「대아」 ‘앙편’(仰篇)에 나오는 구절이다. “白圭之玷 尙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백규지점 상감야 사언지점 불가위야) - 흰 옥의 흠결은 오히려 갈 수 있지만(갈아 없앨 수 있지만) - 말에서 드러난 흠결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 남용이 이 구절을 외웠다는 것은 그가 무엇보다도 말에 흠결을 없이 하려는 진실하고 신중한 사람이었음을 엿보게 한다. 말의 흠결을 없이 하려 했다면 그 행위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공자의 인물됨을 보는 자세가 이러했던 것이다.
공자는 공야장에게는 자신의 딸을 시집보냈고 남용에게는 자신의 형님의 딸을 시집보냈다. 어떤 사람들은 사실 인품이나 실력으로 보면 남용이 더 나아 보이는데 자신의 딸은 공야장에게 시집보냄으로써 형에게 더 대접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자(程子)는 이러한 입장에 반대한다. 공자의 딸과 공자의 형의 딸이 연령이나 인품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기에 각각 알맞게 결혼을 하도록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어쨌든 자신의 딸과 조카딸을 시집보냈다는 사실은 공자가 사람을 믿고 그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행하는 인물인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하였다.
이러한 공자의 인물관에서 그리스도인이 배워야 할 교훈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과 신뢰의 실천이라고 본다. 그리스도인이 누군가를 신뢰할 때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따르고 끝까지 그 신뢰를 미루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주관적 판단과 신뢰가 요즈음 한국의 그리스도인에게서 시들해져 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말로만 믿는다 하거나 말로만 바르게 행동하는 것처럼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말과 행동을 미덥게 하고 타인에게서 미더움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말과 행동의 기준은 말씀에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준거로 삼아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을 참 믿음의 사람으로 신뢰하고 끝까지 신뢰를 거두지 말아야 한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언행에서 진실함을 회복하자.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에 근거하여 자신의 말과 행동을 결정하자. 나타난 말과 행동과 일체의 사태에 대하여 자신이 준거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평가하자. 타인에 대해서나 자신에 대해서나 이 기준은 동일해야 한다. 모든 인생들의 일생과 상황들, 우주 변화의 일체의 과정들을 자신이 준거가 되어 판단하자. 동시에 이 판결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해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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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스물 둘. 종교개혁 이후 세속 정치에 대한 이해 <2> |
언어의 뿌리: 인간의 맹목성과 신적 의도성 사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