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공자의 제자관 (3)
子 使漆雕開 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
자 사칠조개 사 대왈 오사지미능신. 자열.
子曰 道不行 乘桴 浮于海 從我者 其由與. 子路 聞之 喜,
자왈 도불행 승부 부우해 종아자 기유여. 자로 문지 희.
子曰 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자왈 유야 호용과아 무소취재.
『논어』 5장 「공야장」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칠조개에게 벼슬을 하라고 했다. (칠조개가) 대답하기를 “저는 (벼슬하는 것을) 아직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공자가 기뻐하였다.
공자가 말했다.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서 바다를 떠다녀야겠다. (그때) 나를 따라갈 사람은 자로다.” 자로가 그 말을 듣고 기뻐하였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자로는 용기를 좋아하는 것이 나보다 낫다. (하지만) 사리를 적절하게 헤아려서 의에 맞게 할 줄 모른다.”
칠조개는 공자의 제자다. 자는 자약(子若)이다. 공자가 보기에 칠조개는 벼슬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공자의 벼슬을 하라는 권유에 대해 칠조개는 아직 부족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가 아직은 사람을 바르게 하기(治人, 치인)에는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추측하듯이 칠조개는 후에 훌륭한 덕을 지닌 학자로 성장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공자가 기뻐한 것은 칠조개의 배우려는 의지와 겸손함이었다.
자로 역시 공자의 제자다. 그는 힘이 센 사람이었다. 용기가 대단하였다. 무서움을 몰랐다. ‘공자가 바다를 떠다녀야겠다’고 한 것은 당시 세상에 도가 행해지고 있지 않음을 탄식한 말이다. 험한 세상을 피해 방랑의 세월을 자처할 때 무조건적으로 따를 제자가 자로였던 것이다. 그는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고 선생님을 따라나설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로는 ‘무소취재’, 즉 모든 사리를 따져보고 헤아려서 의리나 이치에 맞게 행동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其不能裁度事理以的於義也, 기불능재탁사리이적어의야) 인물이었다. 공자는 자로의 용기 있음을 칭찬하면서 동시에 자로의 모자라는 점을 날카롭게 훈계한다. 이를 통해서 자로가 자신의 단점을 고치고 장점을 키워갈 수 있는 인물이 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가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상은 공자의 인물관보다 나은 것이 있는가. 교회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세상의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처리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매사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늘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전하는 일과 예배하는 일, 이웃을 사랑하는 일 등등에서 자신은 늘 부족한 자라고 여겨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일을 마주하든지 그 일을 어떻게든 하나님의 뜻에 합치하여 행해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오늘날과 같은 극렬히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사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처리하고자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울 사도의 탄식과 같이 선한 그리스도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는 탄식의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비록 곤고하지만 하나님이 완전하신 것 같이 완전해지려고 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할 일은 명확하다. 늘 하나님 앞에서 겸허하여 사람을 구하는 일에 헌신하고 매사를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인물을 길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곤고한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구원의 주 그리스도를 고대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교회 안의 세습의 악습이나 헛된 권위주의에 의존하는 인물을 길러내어서는 안 된다. 그 대신에 한국교회는 독수리가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듯이 하늘나라를 향해 달려 나가는 인물을 길러내야 한다. 한국교회여, 하나님 앞에서 가야 할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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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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