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스물 다섯. 로마 가톨릭 개혁운동의 역설: 다시 교황의 품으로!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익숙한 위의 본문은 사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위의 본문을 보면 기독교 사랑은 행동의 실천으로 대체하거나 환원할 수 없는 차원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삶 정도면 하나님 앞에서 얼마든지 인간으로서는 완벽한 사랑을 실천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텐데, 사도 바울이 깨달은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으로는 아무도 실행에 옮길 수 없다.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의 진정성은 듣는 청중들이 모두 찬성하고 공감하고 수긍하고 감동도 받는다면 일반적으로 진리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바울에게 하나님 사랑은 사람의 평가와는 무관한 오직 신 중심적 사랑이 그 초월적 본질이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랑,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의지가 담겨 있지 않다면 신약 성경 절반을 쓰고 평생 복음 진리를 전한 바울의 전도도 요란한 꽹과리 소음에 불과하다. 교회의 통치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돌보지 않는 복음 전파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사도 바울처럼 어떤 신적 계시의 비밀을 안다고 하더라도, 또 그 깨달은 진리를 위해 자기 몸을 불사른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공허한 것이다. 성경의 사랑은 인간한테서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지도 허락하지 않는다.
사실 위의 본문은 개혁파 신학의 핵심 교리를 담고 있는 칼빈주의 5대 교리와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첫 번째 교리가 ‘인간의 전적 타락’이다. 인간의 본성은 전적으로 부패하여 하나님께 ‘선(善)’과 ‘의(義)’가 될 만한 어떤 여지도 없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창세전 선택과 구속에서는 물론이고, 칭의와 성화 과정에도 인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만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개혁파 교회는 칼빈 이후 특히 성화론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허용한다. 그런데 이러한 허용은 개혁파 신학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다른 신학적 교리에도 큰 영향을 미치면서 로마 가톨릭의 구원론과 성화론으로 되돌아가는 종교개혁의 퇴락을 낳는다. 이번 호에서는 종교개혁의 여파로 로마 가톨릭 내에 일어난 로마 가톨릭 내부의 개혁을 잠시 집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로마 가톨릭의 개혁은 그들의 교리대로 내면보다 외적으로 도덕적 행위를 강화하면 하나님의 선(善)과 의(義)를 얼마든지 다시 실천하게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중세 로마 가톨릭의 부패한 교황이나 주교의 행위를 본받지 않고 우선 개인이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절제된 행동을 하면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된다고 여긴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거나 병원과 같은 치료시설을 만들어 병든 사람을 치료해 주면 하나님 앞에서 큰 의가 된다. 간단히 말하면 종교개혁 초기 15세기 말과 16세기 초 로마 가톨릭이 단행한 그들의 개혁이란 천 년 동안 부패했던 종교지도자들의 부패를 단절하고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자선(慈善)을 하면 그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의 개혁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면이 있다. 개인적 도덕 실천이나 사회 윤리적 차원의 대규모 실천이거나 반드시 로마 교황의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칭송을 받더라도 로마 교황청의 눈과 귀에 거슬리면 이단으로 낙인찍히고 심하면 화형대로 가야 한다. 이렇게 보면 로마 가톨릭 방식의 도덕 회복 운동은 결국 교황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제도에 갇혀있기 때문에 시작부터 ‘인본주의’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인이라는 교황 앞에서 하는 선행(善行)이기 때문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반대로 교황이 인정한다면 총과 칼을 사용해 무력으로 이웃을 진압해도 ‘선(善)’이 된다. 자기 몸을 이웃을 위해 불살라 버린다고 해도 교황이 인정하면 ‘선’이 되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악’이 된다. 하나님의 심판 자리를 교황이 차지하게 하는 운동이 로마 가톨릭 개혁 운동이다.
앞에 해당하는 로마 가톨릭 개혁 운동 중에 15세기 말 이태리 제노바에 ‘하나님의 사랑 오라토리오회’가 있었다. 부패한 성찬식 개혁운동, 성직자와 평신도가 함께 (프랑스 군인이 그 감염 원인인) 당시 수치스러운 질병인 매독 환자 돌봄, 재정적 어려움과 질병에 고통받는 사람들 구제 활동은 이태리의 독특한 자선 사업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자선 운동의 여파로 로마 교황청을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독일의 종교개혁과 같은 반가톨릭 운동이 이태리 반도에서는 대규모로 확대되지 않았다. 특히 사제들이 안정된 종교적 특권을 포기하고 헌신과 봉사로 시민들을 돌보는 행위를 하면 마치 ‘메시아’가 나타난 것과 같은 호감을 일으켰다. 이들은 부패한 동료 사제들을 비판하면서 로마 교황청에 대한 충성 서약은 확고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경건생활과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며 인문주의자들이나 종교개혁자들 나아가 유대인에 대해서는 증오심을 숨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은 교황청에 충성을 다짐한 교황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성직자들, 귀족들, 여성들의 자발적 수녀회의 자선 봉사는 사회적으로 로마 교황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교황에 대한 충성과 시민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실천한다는 것은 이태리 반도에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잠재우기에 충분했으므로 교황에게 여간 기쁜 일이 아니었다.
유사한 동기의 또 한 부류가 ‘예수회’(the Society of Jesus)다. ‘이니고 로페즈 데 로욜라’가 창시자이며 로마 교황에 대한 열렬한 충성 맹세가 기저에 깔려있다. 그는 꿈에 성모 마리아를 만나고 그의 부름을 받아 1522년 예루살렘으로 십자군 원정을 떠났다. 하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원정을 하면서 로마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내면의 자기 변화를 단계적이며 체계적으로 기록한다. 교황은 이를 기쁘게 여겨 ‘영성수련’이란 책으로 출판한다. 이 책은 서방 기독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한 권이다. 이 회원들을 ‘제수이트’(Jesuits)라고 하며 이들은 ‘교황의 손에 쥐어진 무기’(앞의 책, 480)가 되었다. 이 단체는 이후 로마 가톨릭의 정치적 격변기에 세속적으로 매우 뛰어난 정치적 재능을 발휘하며 교황을 만족시키면서 경이적인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로마 가톨릭 자체의 개혁 운동이란 결국 로마 교황의 권력을 회복시켜주는 일과 연관된다. 성경 권위가 교황 권위에 의해 다시 잠식당하는 과정이 로마 가톨릭의 개혁 본질이다. ‘발데스파’와 같이 루터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칼빈의 예정론을 발전시키려는 운동도 부분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후안 데 발데스 자신은 『교리문답서』를 발간하여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입문서도 발간한다. 그는 성경을 번역하고 주석을 하기도 했으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끄는 것은 성경이 전부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태리와 스페인을 중심으로 일어난 로마 가톨릭 개혁 운동은 교황권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하였기 때문에 결국 교황 권위를 회복하는 운동으로 끝나는 한계가 있었다.
<190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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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진정한 강자 |
행동이 말을 앞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