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문헌학자 니체: 진서(眞書)와 위서(僞書) 사이의 갈등
‘저작들의 정신적 통일성’은 방법적 연결이나 시종일관 동일한 세계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저자의 개인적 정신생활에 있다는 것입니다.
앞의 인용은 니체가 스위스 바젤대학 고전문학 교수 재직 시기였던 1871-1872년 겨울학기 연구 주제들과 관련된다. 저작의 통일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정신적 생활의 결과이므로 타인이 통일된 세계관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니체의 판단이다. 이 당시는 칸트와 그의 계승자들이 인간 이성의 법정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소환하여 재판을 진행 중에 있었고 상당 부분은 성경권위는 조작된 인간 문서라는 판정을 받고 있었다. 니체가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그러한 분위기에서 청소년 시절까지 성장하는 동안 독일 신학계는 신학의 유일한 원천인 성경을 원저자 성령부터 부인하면서 성경진리를 해체하고 있었었다. 19세기 중엽을 성경권위와 연관시키자면 ‘오직 성경만(sola scriptura)’을 신학의 근원으로 외치며 시작된 종교개혁의 후예들이 200여 년이 지나 그 모든 것을 역사의 한 에피소드처럼 치부해 버린 시기였다고 본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면서 니체의 작업 또한 얼마나 이러한 성경권위 추락을 가속화하는지 따라가 보자.
당시 젊은 문헌학 교수의 관심은 고대 문서에서 제기되는 ‘저자의 신빙성’ 문제였다. 플라톤(Platon, 428-348)의 저서의 진정성을 두고 벌어지는 독일학계의 여러 주장들을 모아 니체는 자신의 철학 체계 수립을 준비하던 시기다. 무엇이 플라톤의 진본(珍本)이고 위서(僞書)인지 당시 고전 문헌학계는 논쟁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데 니체가 지켜본 플라톤 저작의 진위 문제는 결국 플라톤의 핵심 사상인 ‘이데아론’(그리스어-eidos, 영어-idea, 한글-형상론形相論)이 어떻게 구축되었는지를 밝히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서구 지성사를 지배하는 개념이 바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이기 때문이다. 이데아론과 관련해서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참으로 존재하는 영원불변의 실재가 과연 있는가? 있다면 유한한 인간이 그러한 실재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을 알게 된다면 인간의 삶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그 이데아의 진리가 개인의 실제 삶에서 제대로 구현하여 실천하고 있는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가? 신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신의 존재 증명에 대한 문제와도 직결된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한 관심은 서구 사상을 지배하는 문제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젊은 니체는 후에 플라톤 저서의 진위를 따지면서 서구의 지적 방향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의 말을 따르면 해머(hammer)를 가지고 서구의 전통적 존재론이며 진리론이었던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박살 낸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진리가 아니라 가장 큰 ‘허구’ 즉 ‘가장 크게 조작된 허구’라고 비판하게 된다. 이러한 점을 배경에 두고 니체가 저작의 통일성을 문제 삼는 과정을 더 따라가 보자. 니체는 19세기 중엽에 일어나는 플라톤 저서의 위서(僞書)와 진서(眞書) 논쟁의 과정을 분석하고 자기 철학의 구축을 위해 비판적으로 종합한다. 플라톤 저작의 진위 판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사람은 그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였다. 하지만 이 제자의 저술들 태반은 유실되었기 때문에 이 또한 플라톤 저서의 진위 논쟁을 가속화했다. 즉 이데아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방법의 난맥상이 젊은 문헌학 교수의 연구를 더욱 자극하고 있었다. 어떤 철학자는 플라톤의 이데아론뿐 아니라 플라톤 사상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국가(politea, The Republic)’에 대해서 “주제를 철저히 생각해보지도 않고”(58쪽) 쓴 책이라고 혹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즉 이데아론이나 영혼불멸론에 대해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쓴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평가는 통상 알고 있는 플라톤 저서의 권위를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그런데 니체는 이러한 저서 진위 논쟁을 보면서 원저자의 의도를 통일된 체계로 만들려는 시도 자체를 문제로 삼는다. “누가 감히 플라톤적인 것이 어디에서 멈추는지의 한계를 규정하려 하겠습니까?”(60쪽) 이 말은 플라톤이 위대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플라톤 저작의 통일성을 규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플라톤 저작에 대한 진위 시비 논쟁은 바로 당시에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대한 비평으로 이어졌다. 성경권위의 추락을 예고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인간 이성의 잣대로 성경을 문헌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문제 삼지 않을 부분이 거의 없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니체의 책들을 분석하고 비평하면서 더 전개하고자 한다.
원저자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의 논리적 통일성 확증’(www.ibt.or.kr)은 성경권위 회복을 위해 반드시 증명해야 하는 과제다. 통일된 하나의 주제와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 학자들이 하는 방법은 연대별로 정리하는 것이 가장 안전해 보이고 객관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니체는 이것부터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원저자의 의도를 통일성 있게 구성하는 것은 중지하라고 한다. 중지한다고 저서의 통일성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니체도 이것을 모를 리가 없으며 후에 그는 자신의 사상을 독특한 글쓰기 방식으로 체계화하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꼬마 목사’로 불렸던 니체에게는 잡동사니 문서가 된다.
우리는 종교개혁이 시작된 나라에서 성경권위가 붕괴되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성경진리에 더욱 몰두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이하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분, 그리고 다시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너무도 명확한 말씀을 다시 주목하게 된다. 유일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대한 예수님의 성경관이다. 그리고 그 통일된 진리를 그분이 자기 백성들에게 반드시 깨닫게 하시겠다는 약속도 다시 확고히 하자.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지체들에게 이미 관절과 골수까지 지배하는 생명의 말씀이 운동하고 있다(히 4:12)는 것을 다시 새겨본다.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 24:44-49)
<189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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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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